|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빈자리가 요즘처럼 크게 느껴지는 때가 없는 것 같다.
지난 15일 삼성그룹 영빈관(승지원)에 모인 전경련 회장단은 한 목소리로 이건희 회장에게 전경련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회장은 말없이 웃음만 지어 보일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에 삼성측은 이 회장이 거절의 뜻을 밝힌 것으로 본다는 공식적 입장을 밝혔지만, 전경련은 이 회장이 명백한 거부 의사를 밝힌 게 아니므로 더 기다려 보자는 분위기다.
조석래 회장의 사표가 수리된 것도 아니며, 아직 임기가 7개월이나 남았으니 시간을 두고 결정을 하자는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사실 전경련 회장단은 이날 이건희 회장에게 회장직 수락을 받아내 재계 원로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르면 8월 임시총회를 열어 새 회장으로 선임할 계획이었다.
회장단은 삼성이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인 데다 G20 정상회의와 비즈니스 서밋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국제적 인물로도 이건희 회장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았다.
게다가 내년 전경련 창립 50주년을 맞아 초대회장인 이병철 회장의 아들인 이건희 회장의 전경련 회장 활동이 위상이 약화된 전경련을 살릴 수 있는 카드로 봤던 것이다.
◆ 전경련의 전신 한국경제인협회, 경제 재건에 앞장
호암 이병철 회장은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계속된 혼란으로 경제활동은 위축되고 고물가나 실업문제가 심각했다. 게다가 농작물의 흉작까지 겹쳐 쌀파동이 일어났다. 중첩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경제계의 협력이 절실했다. 이에 정부는 경제계의 의견을 타진한 뒤 이병철 회장에게 한국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호암은 거듭된 사양 끝에 1961년 8월 16일 창립총회서 초대회장으로 선임됐다. 한국경제인협회는 '경제인 및 경제 각 부문 간의 연결을 도모하며, 주요 산업의 개발과 국제 경제 교류를 촉진함으로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협회는 1962년에 시작된 정부의 제 1차 경제개발계획을 위한 경제계의 대정부 창부 역할을 담당했다. 회원사들은 국가의 기간사업의 건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에 정유·제철·시멘트·비료·나일론·합성수지·전기기관·케이블 등의 공장건설안을 최고회의에 보냈고, 최고회의는 이 제안에 따라 투자명령을 전달했다. 이렇게 기업인들의 노력으로 국가경제 발전은 가속도가 붙게 된 것이다.
특히, 이병철 회장은 협회 구성 이전 1960년 부정축재자로 구속됐던 11명의 기업인들을 국가 건설의 주도자로 탈바꿈 시키는데 앞장섰다.
4.19 이후 불안한 사회 속에 삼성 산하의 15개 전 기업체가 탈세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다. 이에 부정축재자로 낙인이 찍힌 호암은 일본에 머물며 두문분출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5.16 군사 혁명이 일어나, 5월 26일에는 도쿄에 머물고 있던 이병철 회장을 제외한 11명의 경제인들은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른다.
빈곤추방을 위해 앞장서야 하는 경제인들을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으로 여전히 일본을 머물렀던 호암은 본국 및 구속된 경제인들의 귀국 요청에 결국 한국을 향하게 된다.
당시 호암은 귀국에 앞서 "부정축재자를 처벌하는 혁명정부 방침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국가경제 재건에 기여하면서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주어 생활을 안정시키고 세금을 납부해 국가 운영을 뒷받침해온 기업인들을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의 안정 없이 빈곤을 추방할 수 없다. 나는 전 재산을 헌납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이 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사회혼란의 원인인 '빈곤'을 제거하기위해 경제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임을 강조했다.
한국에 도착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만나면서도 호암은 "경제인들에게 벌금 대신 공장을 건설해 그 주식을 정부에 납부하는 식으로 경제건설의 일익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국가에 이익이 될 것이다"고 피력하며, 경제인을 활용해야만 경제건설이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렇게 해서 부정축재로 구속됐던 12명은 처벌을 당하는 대신 벌과금으로 대체되며 경제건설에 참여하게 됐다.
◆ "삼성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다"
50년이 흐르며 경제인들에 대한 시각이 급격히 달라졌다. 60년대 당시 어려운 시기에 경제를 일으킨 기업인들에 대한 존경의 시선보다는, 비난의 여론이 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주들은 투철한 국가관으로 나라의 경제를 일으키는데 앞장섰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힘 있는 국가'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병철 회장 역시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했던 기업인이었다.
호암은 "삼성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다. 국가가 부흥하면 산업은 저절로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것은 나라가 기본이다. 나라가 잘 되어야 기업도 잘 되고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 사회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기업이 있는 것이다. 국가관·사회관이 없는 사람은 기업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부정축재자라는 여론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라가 만사의 기본이다'는 신념 때문이다. 이에 호암은 반기업인의 정서로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는 박 정희 부위장의 말에 "국가에 반드시 필요하다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가 아니겠습니까?"고 언급할 수 있었다.
현재 전경련은 61년 설립 당시 '경제재건'이라는 대의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 새로운 사옥건립 및 경기 부양, 일자리 창출, 노사관계 선진화, 한미 FTA 등 재계 현안뿐 아니라 올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연계한 비즈니스서밋(경제인 정상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회장의 활발한 활동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회장을 하겠다고 자처하기는커녕, 하나 같이 거부의사를 밝히는 것을 보면 '짐'을 떠맡기지 않으려는 재계 지도자들의 모습으로 비쳐질 뿐이다. 세월의 흐름이 '국가 경제 성장'보다 최대 실적을 남김으로 주주들에게 최대 이익을 배분할 수 있는 회장을 원하고 있으련지도 모르겠다.
그룹 위상이나 인물·연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건희 삼성 회장이나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이 오래전부터 적임자로 거론됐지만 본인들의 고사로 번번이 불발로 끝났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기아차 그룹의 글로벌 경영에 전념하기도 벅차다는 입장이다. 구본무 LG 회장은 지난 98년 대기업간 빅딜 과정에서 LG반도체를 당시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에 넘기도록 결정한 전경련 중재안에 반발해 10년 넘게 거리를 두고 있어 말붙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4대 그룹 중 한 곳은 최태원 SK 회장은 연륜을 중시하는 재계 풍토상 회장직에 나설 만한 형편은 아니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전경련 회장단들이 만장일치로 추대한 이건희 회장은 3년 전 고사한 것처럼 이번에도 아무런 말이 없다. 삼성측은 승지원 회동은 이 회장이 경영복귀에 따른 인사차원에서 전경련 회장단을 초청해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지만, 전경련 회장 부재라는 중대한 사안 앞에 이건희 회장의 결단을 기대하지 않았던 이가 누가 있겠는가?
물론 비자금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경영에서 물러났다가 정부의 사면복권으로 23개월만인 지난 3월 말 경영 복귀를 한 터여서 여론의 시선이 부담일 수 있다.
게다가 기업내 신수종 사업에 대한 과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부담감 등이 그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한두 가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건희 회장은 '인류와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업만이 발전할 수 있다'는 호암의 말에 심사숙고해야 할 때이다. 바로 이것이 기업가가 지켜야 할 기업윤리이기 때문이다. 기업가가 이것을 지키지 않을 때 우리나라의 경제는 건전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