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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규제안에 은행권 반발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금융당국의 퇴직연금 규제안이 보험사의 편의만 봐주고 은행은 죽이는 조치라며 은행권이 반발하고 있다.

이번 규제안의 규제 대상에 사실상 보험사는 포함되지 않아 은행권만 규제 직격탄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에 보험업계는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금융위원회는 현재 은행, 증권이 판매하는 퇴직연금신탁에 예금, 주가연계증권(ELS) 등 자사 원리금 보장 상품을 70% 이상 담지 못하도록 하는 `공정한 퇴직연금시장 조성을 위한 감독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 선점을 놓고 은행, 증권, 보험 사업자의 고금리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는 이달 중순까지 규정개정을 예고한 뒤 9월 초까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와 금융위 의결을 거쳐 개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은행권이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은 편입 비율 제한 대상에 보험은 자사상품이 없는 구조라는 이유로 빠지고, 은행과 증권에만 적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증권도 자사 원리금보장상품의 운용 비중이 현재 30~40%대에 불과해 자사 상품 비중이 99.8%인 은행만 사실상 피해를 본다.

보험사는 보험계약의 특성상 보험상품 형태로 판매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상품 운용단계에서는 국공채나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으로 운영해 사실상 자사 상품이 없는 구조다.

또 고금리를 제공할 경우 이로 인해 발생한 손실이 순수 자기(주주) 손실이므로 고금리를 제공해 경쟁을 촉발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 보험사의 경우 일반계정과 특별계정간의 운용과 손익이 이미 엄격히 분리된다.

은행의 경우 퇴직연금으로 자금을 받아 자사의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다른 고객 예금과 묶어서 운용한 점이 문제가 됐지만 보험업계는 일반계정, 특별계정의 분리운용이 확실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이유로 금융위는 보험을 규제대상에 제외시켰다.

금융위 관계자는 실제로 "은행이 자기 은행의 정기예금을 100% 담으면 신탁 취지에 어긋나고, 고금리 제공 등의 문제가 생긴다"며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고금리를 제시하면 다른 예금자가 차별받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개정으로 현재 거의 100%를 자사 예금으로 담고 있는 은행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은행은 퇴직연금 고금리 경쟁을 주도한 보험사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퇴직연금의) 고금리 문제를 지적했는데, 은행이 금리 경쟁을 자제하는 동안 보험과 증권사가 고금리를 부추겼다는 게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보험사만 대상에서 빼주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보험사의 자사 원리금 보장상품 운용비율이 90%를 넘는데 자사상품이 없는 구조라는 당국의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사 연계상품이 없는 보험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에 반기는 분위기지만, 퇴직연금 과열경쟁에 대한 우려가 높은 시점이라 드러내놓고 환영의 뜻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2005년 당국이 모든 기업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면서 은행권의 특혜를 줬던 바 있다"며 "이번 개정안은 보험사에 특혜를 준 게 아니라 이제서야 공정거래의 장이 마련된 것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퇴직연금 시장은 현재 36조원대 규모로 은행권이 50%대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고, 보험권은 40%대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사 중 가장 많은 퇴직연금 적립금을 보유한 곳은 5조원대의 삼성생명이며, 그 뒤를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이상 3조원대)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한편, 은행들은 전국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규개위에 당국의 조치가 타당성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