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혜란 기자]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중고부품을 빼돌려 새 제품인 것처럼 납품업체와 원전 직원이 공모해서 다시 납품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납품업체 A사 대표와 고리원전 직원(4급) B씨는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한국수력원자력과 부산지검 동부지청 등에 따르면, 고리원전 3ㆍ4호기의 관리와 운영을 담당하는 고리제2발전소에서 2~3년전 터빈밸브작동기의 부품인 메니폴더를 교체하면서 신규 제품 대신 중고품을 A사로부터 납품받아 사용하고 있다는 진정이 검찰에 접수됐다.
터빈밸브작동기는 원자로 외부에 있는 2차계통에서 나온 증기를 터빈으로 보내는 양을 조절하는 설비다. 메니폴더는 터빈밸브가 작동하지 않도록 고정하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
해당 제품을 납품한 A업체는 한수원 2발전소 담당직원과 짜고 고리원전에서 사용한 메니폴더를 외부로 밀반출해 신규 제품인 것처럼 위장해 다시 납품했다는 것이 진정의 내용이다.
해당 중고 부품은 수억 원에 달하는 부품으로, 현재도 고리2발전소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수원 측이 원전의 안전성에는 영향이 없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고리원전 관계자는 “3개월 마다 해당 부품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어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한수원이 지난 7월 원자력 터빈밸브 작동기(입찰가 62억 원 상당)를 입찰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당시 입찰에는 A업체와 B업체 등 두 곳이 참여해 A업체가 입찰자로 선정됐지만, A업체가 B업체의 도면과 절차서가 자사의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한수원 직원과 B업체가 짜고 자사의 도면 등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B업체와 한수원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B업체가 역으로 지난 입찰의 과정이 석연치 않을 뿐 아니라 과거 A업체가 중고 제품을 납품한 사실을 지적하며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게 된 것이다.
검찰은 고리원전 1호기와 2호기의 운영을 맡고 있는 고리1발전소의 납품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중이다.
사건이 입찰과정에 대한 문제로 번지자 검찰은 지난 4월부터 고리1발전소에서 진행된 터빈밸브작동기 입찰과정에서 A업체가 최종낙찰자로 선정된 것과 관련,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확인작업을 하고 있다.
1차 입찰때 C사가 45억원에 단독입찰했으나 2개사 이상 참여하지 않아 무효화됐다. 3개 업체가 참여한 2차 입찰에서는 68억원에 응찰한 A업체가 낙찰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C사는 A사의 터빈밸브작동기 설계도면을 도용한 것으로 밝혀져 실격 처리됐다.
A사는 수입에만 의존해오던 터빈밸브작동기를 고리원전 직원들과 공동으로 국산화하는 데 성공해 특허청에 등록하는 등 이 분야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C사 관계자는 "고리1발전소가 입찰을 하면서 설계도면을 당연히 공개해야하는데 이를 하지 않았고 A사에 유리하도록 3~4차례 공고문을 변경하는 등 A사를 밀어주려고 했다"고 입찰 부정의혹을 제기했다.
고리원전은 "터빈밸브작동기는 원전의 안전성에 직접적인 영향은 주지 않는 설비"라며 "중고부품이 사용됐는 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3개월 마다 해당 부품에 대한 안전점검을 해온 결과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고리원전은 1발전소 입찰부정의혹과 관련 "C사가 설계도면을 도용한 것은 확인됐지만 입찰과정에서 부정행위가 밝혀진 것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