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편집국 기자]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슈는 ‘재벌 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재벌 개혁에 대한 요구가 정치권, 언론, 시민사회 전반적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여야 정치권에서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당별로 정책 차이는 있지만 출자 총액 제한 제도(이하 출총제)의 재도입, 순환 출자 금지, 중소기업 적합 업종 법제화, 재벌세, 불공정 거래 행위 근절 등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면서 재벌 개혁을 위한 움직임에 시동을 걸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 경제에 기여한 공적과 위상에도 불구하고 반(反)대기업 정서가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린 것은 정권 교체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왔던 역대 정권의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경유착, 비자금 조성, 빅딜 정책 등 대기업에 대한 `압박`이나 `특혜`만 존재했을 뿐 재계와 국민이 모두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원칙에 입각한 정책 지원은 거의 없었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평가다.
그러나 재벌 개혁 목소리가 더 커진 이유는 현 정부의 재벌 규제 완화 정책과 이 법안을 통과시킨 정치권, 그리고 다시 이를 악용한 재벌이라는 트라이앵글로 인하여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 정의 구현에 있어서도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들에게도 혹여 아무리 법망에 경계선에서 위법을 피해갔다 할지라도 재벌들이 한국 사회가운데 건전한 존경받는 집단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부만큼의 개혁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재벌들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보기는 어려우나 경제 집중화와 함께 법집행에 있어서도 특혜는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 10대 그룹 재벌 총수들이 모두 2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나 실형을 전혀 살지 않았다는 통계는 참으로 부끄러운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자산 기준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7명이 모두 22년6개월의 징역형 판결을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를 받아 실형은 없었다. 지난해 형사사건의 집행유예 비율이 25%에 그친 것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색하다. 게다가 재벌 총수들은 횡령?배임, 비자금 조성, 부당 내부거래, 외환관리법 위반 등 범죄의 종류를 불문하고 예외 없이 사면을 받았다. 이들에 대한 사면?복권은 형 확정 뒤 일사천리로 진행돼 사면에 걸린 기간이 평균 9개월에 불과했다.
치열해 가는 국제 사회 가운데 한국 기업의 이익을 지켜낼 목적으로 선발한 법률인 조차도 법조계 인사들과 결탁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로 상징되는 상사 법부에 대한 불신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현실이 이쯤 되면 한국 사회에서 ‘엄정하고 평등한’ 법집행을 입에 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얼마 전에도 회사 돈을 횡령한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현재 거액의 횡령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엄정하지 못한 법집행은 총수 개인의 범죄뿐 아니라 재벌개혁의 주요 대상인 경영권 승계, 일감 몰아주기, 사업기회 유용 등 총수 일가와 관련한 불법?편법적 경영행위가 만연하게 된 데에도 큰 책임이 있다.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되더라도 막강한 법률회사를 동원하면 형량을 낮추고 집행유예를 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재벌 총수나 일가에게 심어줬다고 할 수 있다.
재벌 총수들이 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다 보니 이들의 범법행위 전력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2008년에 이어 다시 재판정에 서게 된 SK 최 회장이 최근 새로 인수한 하이닉스 반도체의 대표이사로 무난하게 선임된 과정은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총수의 전횡을 비롯한 재벌 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이를 바로잡을 개혁 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법과 제도를 아무리 잘 갖추더라도 죄 지은 재벌 총수를 관대하게 처벌하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재벌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관용이 아니라 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재벌들이 자신의 성장발판이 된 주요 산업에 대해 발전적인 형태의 투자 증대도 있었겠지만, 약해진 규제를 이용해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과 경쟁이 쉬운 중소?서민 상권으로의 진출에 주력했다. 일감 몰아주기, 담합, 불공정 하도급 행위 등의 각종 불공정 거래 행위를 통해 이윤 창출에만 급급했다. 그 결과 재벌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누리게 된 반면, 중소?서민 상권과 소비자들의 생활은 궁핍해져 반(反)재벌 정서가 팽배해졌다.
특히 재계 2,3세들의 사업진출을 본다면 아버지 세대의 영역과는 사뭇 다르다. 최근4년간 신규 진출 업종 비율은 제조업이 25.8%인 반면, 중소기업 및 서민 상권이 비교적 많은 비제조?서비스업은 74.2%로 나타났다. 특히 비제조?서비스업 가운데에서도 중소?서민 상권이 많은 도?소매업을 예로 들면, 화장품, 의류, 식품, 커피, 베이커리, 농산품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정서는 고착되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부동산 신용에 근거한 국부의 빠른 팽창이 또 하나의 중요한 근거도 제기되고 있으나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매우 시급한 상태이다. 한국 평범한 중산층 붕괴시초 사인으로 생각되는 푸어시리즈 (웨딩푸어, 하우스푸어, 에듀푸어, 실버푸어)가 실제 평생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머지않아 현재 지구촌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나라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 행복 확대라는 주제에 대한 원칙에 근거한 각계 진지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