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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이스라엘처럼] ① 일감몰아주기 사전 차단규제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거의 모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가장 중요한 대선 공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 핵심적인 내용에는 재벌개혁 방안이 포함돼 있는데, 그럼에도 후보들의 재벌개혁과 관련된 공약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대부분의 캠프들이 순환출자를 금지시키고 출자총액을 제한하고 계열사간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하는 정도의 정책들을 내세우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들은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것들에 불과하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도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집행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재벌 문제에 있어 우리와 비슷한 입장에 놓여있던 이스라엘 정부가 시민들의 시위(이스라엘판 Occupy Wallstreet)를 계기로 추진키로 한 재벌개혁 제도들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재벌개혁과 관련해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찾아본다.

[대선기획 - 재벌개혁, 이스라엘처럼]

① 일감몰아주기 사전 차단규제

② 이사회·사외이사 '제대로'

③ 정부의 사후적 심사 권한

④ 회사·증권관련 사건 전담법원

⑤ 비상장회사도 예외란 없다

이스라엘의 재벌개혁 방안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시장에서 무엇이 잘못됐고 어떤 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 과감하면서도 실효적으로 개혁을 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우선 특수관계인간 거래의 사전적 승인 절차를 보면, 특수관계인간의 거래를 차단하거나 줄이려고 하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

이스라엘의 회사법은 회사가 일상적으로 하는 거래가 아니거나, 시장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래가 아니면서 회사의 수익률, 자산상태 및 채무 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래를 'Extraordinary transactions'(일상적이지 않은 거래)로 정의하고 있다.

이 거래는 ▲지배주주 내지는 지배주주와 이해관계가 있는 단체 또는 회사와의 거래 ▲지배주주내지는 친인척과의 용역제공에 대한 계약 ▲지배주주가 임직원으로 있는 회사와의 계약 등으로, 회사법에 의해 감사위원회, 이사회 및 주주총회로부터 사전적인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일상적인 거래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증권법에 의해 거래보고서(transaction report)를 즉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거래보고서에는 승인한 사람들의 이름과 승인하게 된 이유를 기재토록 하고 있다.

특수관계인간의 거래에 대해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주총에 참석한 주주들 중 거래와 이해관계가 없는 주주들(shareholders who do not have a personal interest in the transaction and who are present and voting·독립주주)만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 과반의 득표를 얻어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법 제368조 ④에 '총회의 결의에 관하여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를 적용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특수관계인간의 거래에 대해 주주총회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 주주 중 누가 이해관계자인지 누가 이해관계자가 아닌지에 대한 일차적인 판단은 회사가 하도록 되어 있다. 중요한 점은 감독기관인 Israel Securities Authority(이하 ISA)가 사후적(ex post)으로 이 부분을 검토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회사의 이러한 분류가 투표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는 경우 ISA는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최근의 법 개정을 통해 특수관계인간 거래의 승인을 받기 위한 요건으로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의결권을 행사한 독립주주 가운데 '1/3의 승인'에서 '과반수 승인'으로 변경해 보다 더 엄격하게 했다. 동시에 적은 지분의 독립주주들만이 주주총회에 참석해 의안을 반대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로 '반대'를 의결한 주식수가 의결권 있는 전체 주식의 2%를 넘지 않는 경우 반대의 효력이 없는 것으로 했다.

특수관계인간의 거래를 승인하기 위한 이사회의 경우 이해관계가 있는 이사는 회의에 참석조차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의결권은 당연히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해관계인은 이사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지만, 회의참석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이스라엘에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경영진의 경우에도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 다만, 감사위원회의 위원장의 요구에 의해 입장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사회나 위원회에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참석은 가능하다.

◆ 특수관계인간 거래의 공시

이스라엘의 증권거래법과 회사법에는 이해관계가 있는자에 대한 상세하고 구체적인 조항이 있다.

이스라엘의 증권거래법은 특수관계인(또는 특수관계인이 이해를 갖고 있는 회사)과 거래(일상적이거나 그렇지 않은 모든 거래)를 하게 되는 경우, 회사는 즉시 거래보고서(transaction reports)라고 하는 문서를 관련 당국에 제출하고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 내용에는 거래의 성격과 거래를 해야하는 상세한 이유를 첨부하도록 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거래를 승인한 모든 인사들에 대한 실명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증권거래법에는 일상적이면서 반복적인(recurrent)인 유형의 거래를 예시함으로써 이러한 반복적인 거래에 한해서는 약식으로 된 정기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반복적인 거래의 경우라도 거래의 당사자, 상세한 거래의 조건, 거래일, 승인의 주체, 지배주주의 개인적인 이해관계 등은 최소한 기술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회사법에는 특수관계인과 '일상적이지 않은 거래'를 하는 경우 보고서를 즉시 제출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절차를 따르도록 했다.

회사는 상세한 거래 내용과 함께 주주총회 소집통지서를 이사회 의결 후 14일 이내에 주주들에게 송부해야 한다. 상세한 거래내용에는 '합리적인(reasonable) 투자자라면 알고 싶어할 만한 모든 거래 조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거래의 성격 ▲이해관계가 있는 지배주주 또는 거래로 인해 이득을 보는 이해관계자의 실명 ▲이득의 성격 ▲회사의 승인권 및 그 내용 ▲지배주주가 가지고 있는 의결권 내용 ▲거래가 이루어지기 위한 거래승인 절차 등이 상세하게 기술되어야 한다.

추가로 ▲보고서에는 이사회나 감사위원회가 찬성한 이유(누가 사외이사인지 여부를 포함)와 ▲의사결정에 참여한 모든자의 실명 ▲거래의 가치(가치 산정의 방법) ▲승인이 진행된 절차 ▲반대하는 이사가 있다면 반대한 이유 등 거의 모든 내용을 망라해서 담도록 하고 있다.

◆ 특수관계인간 거래와 주주의 역할

이스라엘의 최근 회사법 개정과 관련해서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주주에 대한 의무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즉, 모든 주주는 회사를 위해 신의와 성실함을 가지고 행동(act in good faith and in a customary manner towards the company and towards other shareholders)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의무는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주주들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며, 또한 다른 주주들을 차별적으로 취급하지 못하도록(duty to avoid discriminating against other shareholders) 하는 의무도 부과했다.

뿐만 아니라 주주들은 회사정관 변경, 자본금 증대, 합병, 특수관계인간의 거래 등을 의결하는 경우 주주로서 권한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주주총회에서 의안 표결과 관련해 유리한 위치에 있는 지배주주 또는 스스로가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주주의 경우 회사에 대해 공정하게 행동할 의무가 부여됐다.

이와 같은 조항에 대해 이스라엘 법원은 이해관계가 있는 거래를 하는 경우 그 이해 당사자가 이해관계를 자세히 알려야 할 의무라고 해석했다. 이를 위반한 경우 행정 및 형사적인 책임까지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집합투자자의 경우 전체 시가총액의 약 18%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집합투자자에 대해 회사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 예로 집합투자자의 경우 투자자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칠 의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주의 의무'를 부여 받았다. 또한 지배주주, 경영진 및 이사들의 자기거래와 관련된 의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의무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