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22일 열릴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심의가 예정돼 있다. 금융회사가 전자금융 사기 피해자에게 피해를 보상하도록 한 개정안은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전자금융 사기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고 있어 금융당국의 근본적 고민이 추가로 필요한 시점이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전자금융 사기 피해자가 고의·중과실이 없다면 금융회사가 피해액을 보상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선의의 금융사기 피해자들이 억울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겠다는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지만, 피해자의 고의·중과실 여부를 입증할 책임을 금융회사에 지운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는 만약 해킹 범죄자들이 공모해 피해자를 가장한 사기극을 벌인다고 했을 때, 금융회사가 직접 가짜 피해자의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범죄자들의 사기행각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날로 진화하는 전자금융 범죄자들에게 범죄 유인을 더욱 강화하는 왜곡된 결과가 발생할 위험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전자금융 보안 체계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보안을 위해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 기술을 인터넷뱅킹의 보편적 독점재로 강제하면서 역설적으로 가장 보안에 취약한 나라로 전락했다. 수많은 보안기술 중에서 오직 공인인증서만 사용하도록 강제함으로써, 해커들이 단 한 가지 장애물 공략 기술만 습득해도 전 국민을 상대로 금융사기를 칠 수 있게 해준 셈이 됐다. 익스플로러에서 컴퓨터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기술인 액티브X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 사용을 강제한 것은 해커들에게 전 국민들의 컴퓨터 뒷문을 활짝 열어준 것과 마찬가지다.
선의의 금융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으로 전자금융 사기가 사라지거나 현저하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가 발생한 뒤에 배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보다, 그런 선의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다. 진정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전자금융 체계 개편에 대한 금융당국의 근본적 고민과 실천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