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참여연대가 23일 라응찬 前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각종 불법·비리 혐의를 상당히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봐주기 또는 비호·은폐한 의혹이 있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검찰, 국세청 등에 대해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제기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2009년 당시 이미 국세청과 검찰이 라응찬 前 회장의 불법적인 차명계좌 운용 및 차명거래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당시 대검중수부의 라응찬 前 회장 차명계좌 압수수색 영장 사본, 또 당시 신한금융지주의 말맞추기 의혹을 엿볼 수 있는 신한금융지주 내부 문건, 당시 신한금융지주에게 제출된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이 사건 관련 법률검토의견서 전문도 공개하고, 공익감사청구서와 함께 감사원에 제출했다. 이 자료들은 모두 익명의 공익제보자의 제보에 의해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가 확보하게 된 자료들이다.
참여연대는 이 사건이 계속 문제가 되자 금감원이 이달 들어 다시 라응찬 前 회장의 불법 차명계좌와 차명거래의 문제점을 재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너무나도 뒤늦은 재조사가 그동안 금융위, 금감원, 국세청, 검찰 등의 직무유기 혐의와 불법적인 봐주기·비호·은폐 의혹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 '신한사태'와 라응찬 前 회장의 불법행위
라응찬 前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1991년 3월 신한은행장 선임으로부터 시작해 2010년 10월 신한금융지주 회장에서 사퇴하기까지 20년 가까이 신한은행 및 신한금융그룹의 최고경영자로 있으면서 '제왕적 지위'를 누리며 각종 불법·비리를 저질러 왔다.
최근 확인됐거나 강력한 의혹과 정황이 제기된 불법·비리 사실은 불법 차명계좌 운용을 기본으로 조세포털(증여세 등),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외국환관리(거래)법 위반,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에관한법률 위반,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이다.
핵심은 라응찬 前 회장이 차명 증권계좌를 이용해 자사주를 매입한 의혹으로, 라 전 회장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린 증권계좌를 통해 신한지주 주식을 매입하고 시세차익을 얻은 것이다. 라 前 회장이 차명예금에서 빼낸 돈으로 차명 증권계좌를 만들어 신한지주 주식 4만주를 매입하고, 다시 다른 사람 명의의 증권계좌로 주식을 옮긴 뒤 2년에 걸쳐 12억원 가량의 평가이익을 얻은 사실이 내부자료를 통해 드러났다고 최근 한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금감원은 지난 2010년 9월 라 前 회장의 계좌 254개에 대한 대대적인 검사를 벌여 이 가운데 차명계좌 6개를 적발하고 업무정지 3개월의 징계를 내린 바 있는데, 금감원은 당시 재일동포 주주 4명의 차명예금만을 문제 삼았을 뿐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 등이 명백하게 당시 '봐주기 조사'를 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라응찬 前 회장 사건이 다시 불거지자 금감원이 재조사에 나섰는데, 금감원은 라 前 회장이 자사주를 취득하고도 이를 보고하지 않거나(소유주식 보고 위반) 미공개 정보를 통해 자사주를 매입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에관한법률' 위반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임직원이 자사주를 매입해 6개월 이내에 단기매매 차익을 얻었다면 이를 반환할 의무가 있는데, 이런 규정을 준수했는지 여부도 검사했다는 입장이다. 현행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에관한법률은 차명계좌를 통한 금융기관 임원의 자사주 취득은 내부정보 이용 가능성 탓에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특히 라응찬 前 회장은 1990년대 말부터 재일동포 주주, 임직원 및 그 가족, 외부 지인 등 수십명의 이름을 빌린 차명예금과 증권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운용하며 막대한 사적 이익을 취해왔다. 이 과정과 결과 전반에서 무수한 불법 행위가 있었던 것이다.
라응찬 前 회장은 비자금 운용 및 관리에 내부 임직원들을 동원해 사조직화 했을뿐만 아니라 사외이사와 감사, 준법감시인 등 내부감시체계를 형해화시켰으며, 정치권과 사정기관, 금융감독 당국까지 로비 등 음성적인 관리를 통해 감시와 규제 장치를 무력화시켜왔다.
그러다 2009년 3월 대검 중수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당시 라응찬 前 회장이 2007년 3월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건넨 50억원의 출처가 차명계좌라는 사실이 불거지면서,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라응찬 前 회장의 비리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게 됐다.
하지만 검찰은 문제의 50억원은 라응찬 前 회장이 개인자금을 투자 목적으로 박연차 회장에게 준 것일 뿐이고 차명계좌는 행정제재 사안이라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여론에 떠밀려 1년 4개월쯤 지난 시점인 2010년 7월에 하면서 금융실명제 위반과 관련한 극히 일부 내용만 적발하고 공개하면서, 업무정지 3개월이라는 경징계로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이 과정 전반에서 금융위, 금감원, 검찰, 국세청 등의 라응찬 前 회장 봐주기 또는 비호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13년 1월16일 신상훈 前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백순 前 신한은행장에 대한 형사재판의 1심 판결이 나오면서 라응찬 前 회장의 업무상 회령 및 정치자금법 위반 사실이 또 다시 드러났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나온 신한 임직원들의 증언과 수사기록 및 변호인 제출 증거자료, 독자적으로 확보한 신한금융 및 신한은행 내부문건 등에 따르면, 라응찬 前 회장에게는 '금융지주회사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다른 중대한 금융관련 법률 위반 혐의와 업무상 횡령·배임혐의도 제기된다.
◆ 사정기관들은 뭐했나
최초 2008년 11월 국세청이 라응찬 전 회장의 비자금 계좌의 전모를 파악해 이를 검찰에 통보했고, 익명의 법조계 인사로부터 입수한 2009년 4월 대검 중수부의 압수수색영장 및 라응찬 회장의 비서조직인 신한금융지주 업무지원팀장이 작성한 내부자료의 차명 계좌 명단을 보면 라응찬 前 회장을 제외하고 라응찬 前 회장의 부인, 그리고 세 아들을 포함해 모두 25명의 차명자 명단(차명계좌)이 적시되어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에 두 명의 검사가 파견되어 있고, 검찰의 요청에 따라 금감원 직원들도 대검과 서울지검에 파견되어 서로 유기적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금융위와 금감원이 전체 차명자 명단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즉 국정원과 검찰은 물론 금융위, 금감원도 최소 2009년도와 조사를 실시한 2010년도에는 라응찬 前 회장이 대규모의 차명계좌를 불법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신한사태'에 대한 1심 판결 이후에도 이 명단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이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라응찬 전 회장을 끝까지 '봐주기'할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무능한 기관 행세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금감원은 2009년 1~7월 신한은행 검사 때 이미 라응찬 前 회장의 비자금 전말을 파악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검찰이 라응찬 前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한 시기와 일치한다. 당시 금감원은 은행검사국과 리스크검사지원국에서 총 35명의 검사역을 투입해 종합검사와 중점부문검사(특별검사)를 병행했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종합검사는 업무 전반과 재무건전성에 대해 종합적으로 실시하는 검사를 말하고, 중점 부문검사는 금융사고예방, 금융질서 확립, 기타 금융감독 정책상 필요에 의해 특정부문을 겨냥해 실시하는 검사다.
금융감독원은 또 2010년 7~9월 '늑장조사'를 하면서도 금융실명제법 위반의 경우 계좌와 거래 내역 등을 특정하지 않으면 조사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2009년 12월 KB금융의 강정원 행장에 대해서는 '감독권 오남용 시비'까지 감수하며 개인비리를 샅샅이 캐는 등, 금융기관 임원 자격의 심사와 관련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례가 이미 있었다.
결국, 금감원과 금융위가 국세청과 검찰을 통해서든, 자체 조사를 통해서든 라응찬 前 회장이 수십여개의 차명계좌를 운용한 불법행위를 확인하고서도 라응찬 前 회장 관련해 재일동포 4인 명의의 차명예금만 적발해 징계한 것은 금감원과 금융위의 노골적인 '봐주기·축소조사'이며 전형적인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10년 7~9월 검사에서는 금융감독원이 신한금융지주 측과 조사범위 등을 사전에 조율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신한금융 업무지원팀에서 2010년 7월23일 로펌 김앤장으로부터 받은 법률검토의견서(금감원의 특별검사 개시를 바로 앞둔 시점에 검토한 의견서)를 보면, 먼저 김앤장은 라 前 회장의 비자금 의혹을 최초 수사한 대검 중수부가 금감원과 자료 요청 건을 협의하고 있다는 상황을 알려주며 '라 회장의 차명계좌가 개설된 신한은행 내 특정점포의 거래정보를 제한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라는 대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당시 금감원은 검찰의 자료 협조 미비로 라응찬 前 회장에 대한 조사가 어렵다고 계속 변명했을 때였는데, 의견서는 이어 검찰의 자료 통보 발표 뒤 금감원이 애초 예고한 종합검사를 라 前 회장의 혐의에 특정한 '중점검사'로 전환할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금감원 조사 일정과 국회(국정감사) 일정에 대한 정밀한 조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대한 법리적인 방어 못지않게 실명법 위반이 도화선이 되어 사건의 외연이 확대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는 것'을 첫 번째 고려사항으로 꼽으며, 라 前 회장의 처벌 수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라 前 회장 차명계좌 운용의 여러 범법 혐의 가운데 실명제법 위반만 어느정도 사실 관계를 인정하고, 형사처벌을 받게되는 조세포탈과 외국환관리법 위반, 특경가법 위반 등의 협의를 피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의견서의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금융당국의 조사 및 제재는 결국 김앤장의 법률자문대로 이뤄졌다. 20명 이상의 차명·도명계좌를 통해 차명 주식거래까지 이뤄졌는데도 금감원은 재일교포 주주 4명의 차명예금만 적발해 라 회장에게 업무정지 3개월의 행정제재만 내렸다. 실제 여러 범죄혐의를 적발했다면 즉각 해임권고와 함께 검찰에 고발을 했어야 할 사안임에도, 금융감독 당국은 라응찬 前 회장의 불법, 비위 행위를 적벌하고도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이것이 만약에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의견서대로 신한금융지주 측과 조사 범위나 조사 결과 등을 사전에 조율한 것이라면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불법행위라고 할 수 있다.
라응찬 前 회장의 경우 '신한사태'에 대한 1심 판결문만 보더라도, 재일동포 주주로부터 개인 변호사비를 빌리는 등 금융기관 임원으로서 여러 위법 사실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금감원·금융위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다시 금감원이 신한 사태에 대한 현장 감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1심 판결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지만 검찰은 이백순 前 은행장과 신상훈 前 사장은 기소했지만, 라응찬 前 회장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