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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전세사기' 피하기 어려웠던 이유

지난해 10월 수도권 일대 주택 1139채를 보유한 임대업자 김모씨가 갑자기 사망했다. 이 '빌라왕 사망' 사건이 대규모 '전세 사기'사건으로 드러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그런데 이후 조사에서 빌라왕이 한 두명이 아니었으며 그 중 3명이 몇 달 간격으로 사망했다. 경찰이 이와 관련해 추산한 전세 사기 피해 규모가 1만여 채에 달하며 수 천 명의 피해자들이 나왔다. 앞으로 전세 사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들의 '전세사기' 수법과 정부 대책에 대해 정리했다. <편집자 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무자본 갭투기'로 다세대 주택을 무더기로 사들여 전세 보증금 수십억원을 편취한 일당 78명을 검거했다고 13일 밝혔다.

검거된 이들 중 2021년 제주에서 숨진 빌라 임대업자 정모씨의 배후로 지목됐던 부동산 컨설팅업체 대표 신모씨와 또 다른 '빌라왕' 김모씨 등 2명은 구속됐다.

이들 78명은 2017년 7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인천 등 수도권 일대에서 다세대 주택 628채를 무자본 갭투기 방식으로 매수해 임차인 37명의 전세 보증금 80억원을 속여 빼앗은 혐의(사기)를 받는다.

'빌라왕' 배후 추정 인물 영장실질심사
'빌라왕' 배후 추정 인물 영장실질심사 [연합뉴스 제공]

 ▲전세사기 어떻게 당했나

이들의 수법 본질은 깡통전세, 무자본 갭투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전월세 보증금을 매매 대금보다 높은 가격에 책정하는 일명 '깡통전세' 수법을 사용했다.

매매 가격이 2억원이면 전세보증금을 2억5000만원이나 3억원으로 올린다. 매매가와 전세보증금 간의 차액이 분양 대행사, 부동산 중개업자, '빌라왕'처럼 명의만 빌릴 바지 사장에게 줄 리베이트다.

또 세입자가 낸 보증금으로 전세금을 받고 빌라를 사들이는 '깡통전세', '무자본 갭 투자'를 동시 진행했다.

이들의 주 타깃은 신축빌라나 다세대 주택, 2030 청년층이다.

빌라나 다세대 주택은 시세 정보가 명확하지 않고 '신축', '풀옵션' 등을 헤택처럼 내세워 세입자를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깡통전세' 사기 수법 피하기 어려운 이유

전세사기는 사실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야 알 수 있다.

빌라의 경우 경매에 넘어가도 매매가보다 보증금이 높아 보증금 전액을 돌려 받을 수 없는 데다 체납 세금까지 있다면 1순위 채권자가 될 수 없다.

이번 전세 사기는 이러한 법망의 허점을 노린 수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탁사가 낀 전세 시가 유형이면 더 상황은 더 복잡하다.

집주인이 신탁회사에 소유권을 넘긴 후 이를 숨기고 계약서를 허위로 만드는 경우, 집주인이 아니면서 소유권이 있는 것처럼 세입자를 속인다.

가령 A씨 신축 빌라에 '빌라왕' C 조직이 2억에 집을 사겠다고 구매 의사를 밝힌다. C 조직은 매매 전 A씨에게 전세를 놓는 조건을 건다.

빌라왕 C 조직은 2억 2천에 전세 매물을 놓고 세입자 C가 게약을 맺는다. 세입자는 집주인 A씨의 등기부등본을 확인 후 임대차 계약을 한다. 몇달 뒤 집주인 A는 C조직에 집을 매도한다.

이들은 계약서상의 집주인을 바꾼 뒤 계약 종료 기한이 다가와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면 '돈이 없다'고 버티거나 '새로운 세입자를 알아서 구하라'고 나왔다.

집주인의 세금 체납으로 건물이 압류되면서 보증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세금 체납으로 빌라가 경매로 넘어가고 나서야 전세 사기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특히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위변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으나 보증보험 미가입자의 경우 경매를 통해 피해를 구제해야 하는 상황일 수밖에 없다.

HUG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세보증보험금 사고가 발생해서 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지급한 건수와 변제액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372건(792억), 2019년 1630건(3442억원), 2020년 2408건(4682억원), 2021년 2799건(5790억원), 2022년 10월말 기준 3754건(7992억원)이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이란 세입자가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가입하는 보증상품으로 집주인이 계약 기간 만료 후에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보증기관이 이를 대신 가입자(세입자)에게 지급(대위변제)하고,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해 집주인에게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숨진 '청년 빌라왕' 자택에 쌓인 체납고지서
숨진 '청년 빌라왕' 자택에 쌓인 체납고지서 [연합뉴스 제공]

▲'세입자 안전핀' HUG 보증보험, 한계 있어

최근 벌어진 전세사기 사건에서는 보증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면서 일부 임대인들이 제도를 악용한 정황이 드러나는 등 전세보증보험금에도 한계가 있다.

세입자는 집주인의 신용에 의구심이 들거나, 전세가와 매매가가 같더라도 보증보험을 통해 보증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임대인의 '깡통전세' 계약 요구를 승낙할 가능성이 높다.

시세 파악이 어려운 신축 빌라의 경우 HUG 보증가입 때 집값을 부풀려 전셋값을 매매가격보다 높이는 일도 있다.

HUG는 보증 가입 기준을 공시가격의 140%로 적용하고 있는데, 집주인들이 이 비율에 맞춰 전세 보증금을 올리기도 한다.

▲정부 대응과 대책은?

임대인이 사망하더라도 임차인이 전세 보증금을 빠르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임차권 등기 절차를 신속화 한다.

법무부·국토교통부 합동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법률지원 태스크포스(TF)’는 이 같은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18일 밝혔다.

대검찰청·경찰청·국토부도 이날 '전세 사기 대응 협의회'를 열고 "전국 단위의 정보 분석과 수사 초기부터의 긴밀한 정보 공유를 바탕으로 청년과 서민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전세 사기 배후세력까지 철저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과 경찰은 전세 사기가 잦은 수도권(서울·인천·수원)과 지방 거점(대전·대구·부산·광주) 등 7곳에 핫라인을 만들어 조직적·계획적 범행을 찾아 수사할 방침이다.

또 오는 4월부터 전세 임차인들이 별도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대인의 국세 체납액을 열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보증금이 일정 금액 이하인 전세 임대차 계약은 미납 국세 열람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임차인이 직접 집주인의 세금 체납 내역을 확인하고 '빌라왕 사건'과 같은 전세 사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단, 2천만원 이하 소액 전세 물건의 경우 열람 권리가 제한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