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검찰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임직원 4인을 약식기소했다.
이는 회삿돈 497억원을 빼돌린 혐의와 더불어 비자금을 조성해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에 대한 지난 5개월간의 수사 결과다. 대한민국 5대 재벌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작은 사업체였다면 엄중한 범죄에 대한 구속수사와 처벌을 받았을 일이다.
이에 앞서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5단체들은 최태원 회장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이는 구랍 29일 특경가법상 횡령 및 배임혐의로 구속수감된 최재원 부회장에 이어 최태원 회장까지 사법처리 될 경우 SK그룹은 물론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03년 1월 경제개혁연대(당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고발로 SK글로벌 분식회계 및 SK해운 부당지원 등의 혐의로 기소돼 2008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채 두 달이 되기도 전에 사면이 논의되어 같은 해 8월 정몽구, 김승연 회장 등 다른 재계 인사들과 함께 '8.15 특별사면'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최태원 회장은 대법원 심리 진행 중에 상고를 취하했는데, 이는 조기에 판결을 확정지음으로써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고자 한 '꼼수'를 부린 것으로 비판받았다.
여기에 최태원 회장은 올해 4월 선물투자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은 사실이 확인됐고, 이 과정에서 차명계좌를 사용한 정황이 포착돼 또다시 검찰의 수사를 받아왔다. 특히 지난 4월 국세청은 최 회장이 2007~2008년 초 선물투자를 할 당시 베넥스인베스트먼트 김준홍 씨와 SK그룹 계열사 고문의 계좌를 사용한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시기적으로 볼 때 최태원 회장이 특경가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와중에,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7월에는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의 비자금조성 혐의가 드러나, SK그룹 계열사 및 그룹총수인 최태원 회장과의 관련성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에 검찰은 SK그룹 계열사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 및 그룹 관계자 소환 끝에 구랍 29일 최재원 부회장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일부 범죄 관련성이 드러나 몇 차례 검찰소환조사를 받았음에도 최태원 회장은 범죄혐의 자체를 모두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과거 최태원 회장의 행적에 비추어 볼 때,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지난 몇 년간 사법부는 재벌총수 일가의 범죄에 대한 '봐주기 판결'을 양산해 사법질서를 어지럽혀 왔다. 대한민국 재벌은 심각한 경제범죄에도 소위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 수사의 과정을 밟아본 적 조차 없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12월29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재계 인사로는 유래가 없는 단독사면을 단행하는 등 재벌총수에게는 유독 관대했다. 아무리 중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돈만 있다면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그나마 있던 범죄도 없앨 수 있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이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법 불신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그 결과, 자신의 형사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또 다른 불법행위를 도모하는 등 범죄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CEO가 등장하게 됐다. 이는 재벌총수에 대한 봐주기 판결이나 사면이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었다기보다, 오히려 기업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런 인사를 두고 재계에서는 또다시 '경영공백'을 운운하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각에서는 검찰이 압력이나 회유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검찰은 재계의 주장에 흔들림 없이 수사결과를 토대로 공명정대하게 최태원 회장의 사법처리 여부와 수위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돈 100만원 때문에 옥중에서 죗값을 치르고 있는 제소인들 앞에서만 당당한 검찰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