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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물가안정 위해 지준율 상향·총액한도대출 축소 검토

[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한국은행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물가를 잡기 위해 6년 만에 처음으로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또 시장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제공되는 정책자금인 `총액한도대출' 규모의 축소 여부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지급준비율 인상은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의지를 시장에 보여주는 `시그널링(신호) 효과'를 갖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조치가 시행될 경우 시중 유동성(자금)을 인위적으로 흡수해 통화량을 줄임으로써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고도 물가상승 억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한은이 이 같은 방안에 대해 검토에 나선 것은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가 연초부터 물가잡기에 총력적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는 물가안정 주무기관인 한은도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인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준금리 인상이 쉽지 않아 차안을 마련하려는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고물가와 대외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황우려라는 두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해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해 반년째 금리를 동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준율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9일 "새해 벽두부터 물가안정이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다"면서 "중·장기 물가정책 수단인 기준금리 이외에 중·단기 차원에서 신속하게 물가를 억제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시행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불황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물가만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올릴 수 없어서 다른 정책수단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단기 정책수단이란 지급준비율 상향, 총액한도대출 축소, 한은이 지원한 각종 펀드 자금 조기회수 등을 말한다.

지준율 인상이나 총액한도대출 축소 등 금리 이외의 통화정책 카드 사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던 한은에 기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

김중수 한은 총재도 신년사에서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각종 수단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평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통화신용정책이 다양해져 새로운 수단의 실증적 효과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혀 지준율 인상 가능성을 예고했었다.

김 총재는 한은 정책기획국, 조사국 등에 지급준비율 상향, 총액한도대출 축소의 실효성과 부작용을 분석·보고하라는 지시도 했다. 물가안정을 위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98년 물가안정목표제가 도입돼 금리 중심의 통화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지급준비율을 통한 유동성 조절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지준율은 3.8%인데, 한은이 이번에 지준율을 올리면 2006년 평균 지준율을 3.0%에서 3.8%로 올린 뒤 6년 만에 지준율을 인상하게 된다.

한은은 지준율 인상과 함께 정책자금으로서 시장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은행에 제공되는 '총액한도대출' 규모 축소 여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액한도대출은 2007년 약 6조5천억원이었다가 2009년 3월 10조원까지 늘었으나 2010년 12월에는 7조5천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재 총액한도대출의 금리는 연 1.5%다.

총액한도대출이 중소기업 전용자금인 점을 고려해 규모는 줄이되 금리는 더 낮출 방침이다.

한은은 조사국, 정책기획국, 경제통계국 등을 통해 새해 이후 전개되는 물가상황이 추세적으로 악화하는지, 단기현상으로 끝나는지를 분석해 이르면 오는 26일 열릴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정책수단 시행 여부를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관계자는 "통화정책 수단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만큼 시행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김 총재가 신년사에서 선제로 동원 방침을 시사한 만큼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지준율 인상과 총액한도대출 규모 축소의 효과다.

한은이 지난 1998년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하고 기준금리 중심의 통화정책을 펴기 시작하면서 지급준비제도는 전혀 활용하지 않은 까닭에 ‘지준율 인상→시중 유동성 흡수→물가안정’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될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또 총액한도대출은 중소기업 전용자금이기 때문에 규모 축소는 자칫 중소기업 지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은도 "한은법 개정으로 예금 종류별과 금융기관별로 지준율을 다르게 부과할 수 있게 된 만큼 금융시장 안정 측면에서 그 효과를 검토해 보겠다는 취지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지급준비율

지급준비율은 금융기관의 예금 등 채무의 일정비율을 지급준비금으로 중앙은행에 예치하도록 하는 지급준비제도의 운용수단으로,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 지준율을 올리면 금융기관의 중앙은행 예치금이 늘어 결과적으로 통화량이 줄어들어 시중 유동성 흡수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총액한도대출

총액한도대출은 한은이 중소기업대출 확대 등을 유도하기 위해 시중금리보다 낮게 은행에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