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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등 기관들 '재벌 거수기' 논란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이 '재벌의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의 하이닉스반도체 사내이사 후보 선임건 때문이다.

13일 하이닉스 임시주총에서는 회사의 정관변경, 이사 선임 및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이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두 통과됐다.

이 중 최태원 회장의 이사선임건은 주총 이전부터 최대 이슈였다. 이날 소액주주들은 최근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최 회장의 선임에 관한 문제점을 집중 추궁했다.

최태원 회장이 하이닉스의 이사로 선임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자신의 형사재판 일정을 감안할 때 경영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날 주총 시작 한 시간 후인 오전 11시에는 회삿돈 횡령 관련 최태원 회장의 2차 공판 일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실형이 선고될 경우 하이닉스는 물론 SK그룹 전체 경영에 불확실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즉, 그룹이 총수일가의 재판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법률리스크를 안고 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닉스 지분을 보유한 53개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제출한 의결권 행사 내역 중 최태원 회장 선임건을 반대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나마 알리안츠생명보험과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자산운용이 중립(shadow voting) 의견을 냈고, 메트라이프생명보험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은 정도다. 우리자산운용의 경우 중립 의견을 냈다가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 역시 이례적으로 이를 반대하지 않고 중립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국민연금의 입장은 의결권의 불통일 행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간 사용하지 않던 방법이라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사 후보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려왔다. 작년 3월 SK와 SK이노베이션 정기주총에서 최태원 회장의 이사 선임안에 반대하고,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현대제철 등기이사 선임에 반대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제1호 안건이었던 정관변경의 건에 대해서도 논란이 여전하다. 하이닉스의 기존 정관에 따르면 이사의 보수는 이사회가 지급여부 및 금액을 정하도록 했지만, 개정된 안에서는 이를 삭제해 개별이사에 대한 보수의 지급여부 및 금액을 대표이사의 전결사항으로 조정했다.

이는 현재 인사위원회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으로, 사실상 지배주주 및 대표이사의 이사회 장악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이사회 내 위원회로서 기존의 이사추천위원회를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로 변경했는데, 이 또한 사내이사 선임에 대한 대표이사의 권한만을 강화시키게 된다.

주총에 참석했던 소액주주들은 "대기업 집단에 대한 마땅한 견제수단이 없음을 감안할 때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총수일가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다"며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여부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지배구조 위험을 줄이는데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