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금융당국이 대기업과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우회적 자금지원 등 부당 내부거래 관행을 뿌리뽑겠다고 나섰다.
금융권 중에서는 첫 번째 대상으로 대기업계열 보험사가 지목됐고, 향후 증권사, 은행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대기업그룹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 대기업 주채무계열의 재무구조를 엄격히 평가해 취약 계열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재무구조개선을 추진한다. 오는 31일까지 '재무구조개선 약정(재무약정)'을 체결하는 대기업들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30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차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위원회' 조찬강연에서 "공정금융질서 확립을 위해 계열사(대주주 포함)와의 부당거래에 대한 검사 및 제재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계열사에 대한 금융상품 몰아주기에 대한 검사는 연초부터 계획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2분기 중 은행보다는 주인(대기업)이 있는 일부 보험사들을 중심으로 검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혀 대기업계열의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가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어 "계열사에 대한 펀드, 방카슈랑스 등 금융상품 몰아주기 등 부당 내부거래 관행이 상존하고 있다"고 말해 향후 대기업계열 증권사, 은행 등으로 확대될 것임을 시사하면서 "공정금융질서 확립을 위해 대주주를 포함한 계열사와의 부당거래에 대한 검사와 제재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권 원장은 미래에셋증권 검사 등 한국은행과의 공동검사에 대해 "지금은 한은과 금감원 간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가계부채와 금융시장 안정, 건전성 감독 등 분야별로 공동검사 요청이 들어오면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대기업뿐만 아니라 금융지주 계열의 보험사, 증권사 등에도 퇴직연금, 펀드, 방카슈랑스 등 금융 관련 상품과 전산업무 등을 계열사에 몰아주는 일감몰아주기 풍조가 만연, 불공정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권 원장은 또 "대기업그룹이 부실화하면 국가 경제에 미치는 부담이 크다"며 "취약한 주채무계열에 대해선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부채규모가 금융권 총 신용공여액(대출.보증 규모)의 0.1%(1조4622억원)를 넘는 34개 주채무계열 중 취약계열은 채권은행들과 이달 말까지 재무약정을 체결해야 한다.
따라서 31일 산은과 재무약정을 체결하는 STX 등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약정서에는 양측이 공동 출자해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한뒤 STX중공업·STX에너지 계열사 지분 등 자산 1조원을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분 매각방식과 가치평가 등을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신용위험평가 시 계열사 지원 여부 등을 배제하고 구조조정대상 기업을 엄격하게 선정하는 등 대기업의 계열지원을 고려한 여신한도와 신용등급 상향을 원칙적으로 폐지할 계획도 밝혔다.
권 원장은 "대기업 계열사에 대해서도 계열지원을 고려한 여신한도 및 신용등급 상향을 원칙적으로 폐지할 것"이라며 "신용위험 평가 시 계열사지원 여부 등을 배제하고 구조조정 대상기업을 엄격하게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펼친 대기업 규제완화정책이 투자확대·고용증대를 이어지기도 했지만 제빵 등 신규진출이 쉬운 서비스업 진출 주력, 일감 몰아주기, 자본시장 내 대기업 쏠림현상 등 부정적인 면도 많다고 강조했다.
권 원장은 "이런 부정적인 사례가 지속하면 국가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의 영업기반이 붕괴할 수 있다"며 핵심역량 및 미래 신성장 업종 발굴·투자, 중소기업 적합업종 진출 자제 등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향후 10대 과제로는 ▲저성장 기조 ▲양극화 심화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 ▲자영업자의 어려움 ▲부동산시장 침체 ▲고유가시대 대응 ▲재벌의 경제력 집중 견제 ▲일자리부족 심화 ▲고령화 시대 ▲미래성장동력 발굴을 꼽았다.
금융감독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부실징후 취약부분의 수시 테마검사, 금융사의 과도한 배당자제, 충분한 충당금 적립 등을 통한 금융산업의 건전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다음달까지 건설, 조선, 해운 등 취약업종의 신용위험을 평가해 정상이나 일시적 유동성 부족기업(B등급)은 채권행사 유예, 신규자금 지원을 하고 구조조정 필요기업(C등급)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적용, 부실이 전이되는 것을 막기로 했다.
권 원장은 최근 유럽의 정치불확실성, 세계 경기둔화 우려 등에 대해 "당분간 금융시장의 불안정한 장세가 지속할 전망이지만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에 대한 신뢰가 높아 금융시장 충격이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