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한국은행이 12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지난달 8일 열린 6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상당수 금통위원이 한은의 지나친 경기 낙관론을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낙관론을 그대로 고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통위원들은 당시 유럽 재정위기, 미국경기, 국내 물가지표 등에 대한 한은의 분석·전망이 잘못됐거나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하며 한은이 잘못된 근거를 바탕으로 해 세계경기를 낙관하고 있다는 질책을 쏟아냈지만 한은은 기준금리 동결을 고수해 관철시켰다.
기준금리 인하 문제를 놓고도 엇박자를 냈다.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가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으나 한달 뒤 열린 금통위에선 13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이에 따라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놓쳤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도 실기(失期)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26일 공개된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작심한 듯 "현재 당행(한은)의 올해 경기전망은 상반기 중에 유로지역 재정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될 것이라는 인식하에 `상저하고'(上低下高) 형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어 "유로 재정위기가 앞으로 상당기간 명확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관련 국가의 재정위기가 순차적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부각되는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올해 하반기에는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한은의 전망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경제전망이나 통화정책을 수행할 때 유로사태는 `변수'로 볼 것이 아니라 `상수'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위원도 "유로지역 재정위기 심화, 중국의 성장세 둔화 등으로 향후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돼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경제심리 변화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하게 점검해 경제전망 때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원은 한은이 작성·분석하는 물가지표가 소비자물가, 근원물가 등 공식 지표물가가 기조적인 물가상승 압력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체감물가와 괴리를 보였다는 이유에서 시장의 신뢰를 잃은 것 아니냐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들 지표가 물가 경계감을 약화하고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에 대한 대외 설득력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했다.
한은의 미국 경제 분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 위원은 “미국마저 경기 회복세가 둔화된다면 대공황과 유사한 침체국면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위원은 "미국도 대규모 재정 적자가 지속해 `재정절벽'(정부의 재정지출이 갑작스럽게 줄거나 중단돼 경제에 충격을 주는 현상)의 가능성이 나오고 장기금리가 하락추세를 보이는 등 불확실성이 적잖다"면서 미국 경제를 낙관해온 한은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금통위원들의 이 같은 잇단 비판에도 한은은 낙관론에 근거한 기존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우리나라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보다 상당 부분 개선됐고, 2008년 리먼사태와 비교하면 가계부채 문제가 심화한 것 외에 실물부문에서는 큰 변동이 없다는 설명을 했다.
경기 측면에서 보면 대외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과 현재 완화 기조가 지속한다는 점 때문에 기준금리 인하가 경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미국 경제에 대해서는 “실물지표가 양호한 모습을 나타내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열린 지난 12일 열린 7월 금통위는 한은의 답변과 달리 1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0.25% 포인트 내렸다.
이 때문에 글로벌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은과 금통위가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금융권에서 나오고 있다.
금통위 의사록은 회의일로부터 6주가 지난 뒤 돌아오는 화요일에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