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정부가 중장기 과제로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연금저축 등에 대한 소득공제를 매칭 방식의 지원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을 단계적으로 줄여 상시ㆍ지속적 업무의 정규직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100세 시대'에 맞춰 고령자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70~75세 등으로 높이고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유도하는 양성평등형 휴직제를 도입한다.
정부는 26일 민관 합동 중장기전략위원회와 30여 차례의 전문가 간담회를 거쳐 안정적인 성장기반과 사회통합이 선순환 하는 `공생발전'의 정착을 목표로 삼은 이 같은 내용의 `대한민국 중장기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이 과제들은 30년 이상을 내다보고 작성한 것으로 구체적인 정책수단과 이행방안을 도출하기보다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길라잡이' 성격이 짙다.
2050년 한국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노인부양 문제가 국가재정을 압박하고, 투자 부진에 따라 잠재성장률 하락세가 굳어지며, 양극화로 사회적 갈등이 심해질 우려가 있다.
정부는 성장과 인구, 기후, 양극화 등의 핵심 부문에서 최선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 방안을 담았다. 이 같은 정책과제들이 실현되면 생산성 향상 등으로 성장률이 1%포인트 추가로 높아지고 고령ㆍ여성인구의 경제활동이 늘어나며 계층간 균형발전으로 신뢰받는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는 낙관적 그림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 세대를 앞서 준비하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성격으로 상당수 과제가 실제로 추진되거나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특히 압축 성장의 부산물인 `불평등'이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고 부문별 격차 완화와 기회균등에 초점을 맞췄다.
먼저 복지 정책방향으로 근로능력의 유무를 체계적으로 판정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로써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재설계하는 방향을 내놨다.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가 시급한 문제라는 판단도 고려됐다.
주요 과제로는 근로장려금(EITC) 대상자 조건을 완화하고 금액도 올리는 방안을 마련했다.
근로장려세제(EITC)의 경우 `주택요건(6천만원 상당 소규모주택)'을 폐지해 조건을 완화하고 근로장려금액도 올리기로 했다. EITC 재산요건에 주택이 이미 들어 있고, 이를 처음 시행한 미국에서도 주택요건은 요구하지 않는 것을 고려한 조처다.
특히 사회보험료와 연금저축 등에 대해 세금감면 대신 매칭펀드 방식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소득공제로 감면해주는 세금 규모와 같은 금액을 매칭방식으로 지원하면 저소득층이 가입할 때 혜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2010년 현재 비정규직의 49%는 국민연금에, 59%는 고용보험에 미가입돼 노후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다.
따라서 고용보험ㆍ국민연금ㆍ연금저축에 가입하면 소득공제로 세금을 깎아주는 대신 감면 총액과 같은 돈을 매칭해 나눠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200만원의 연금저축을 낼 때 소득공제 때 고소득층은 38%의 한계세율로 76만원을, 저소득층은 6%의 한계세율로 12만원을 감면받지만 매칭방식(매칭비율 22%)으로 전환하면 44만원씩 혜택을 받는다. 저소득층은 32만원을 더 받고, 고소득층은 덜 받는 것으로 소득 재분배 효과가 커져 저소득층이 가입할 유인이 커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차별 해소 방안도 내놨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정책과제로는 정규직 보호를 줄이고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기로 했다.
상시ㆍ지속적 업무의 정규직화를 위해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비정규직ㆍ간접고용을 단계적으로 줄일 방침이다.
또 임금격차를 줄이고 퇴직금ㆍ상여금 등 부가급여를 동일하게 지급하기로 했다. 경영상 해고를 최소화하도록 고용유지지원금과 근로자 생계지원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같은 직무는 성별에 따라 임금을 차등하는 사례가 없도록 근로감독을 강화하는 등 남녀 임금격차 해소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남녀 임금격차(39%)가 가장 크다.
100세 시대를 맞아 30~40대 남성인력 활용에 중심을 둔 현재의 고용시스템을 개편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저출산ㆍ고령화에 대비해 개별법에 65세로 규정된 고령자 기준연령을 100세 시대 패러다임에 맞게 상향조정하기로 했다.
고령자 기준은 1889년 독일에서 노령연금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수급연령을 65세로 책정한 것에서 유래했으나 당시 독일인의 평균 수명은 49세였다. 이로 인해 현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년제도 개편한다. 일할 능력과 의사만 있다면 현재의 일자리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평균 정년연령은 57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60~65세보다 낮은 편이다.
산업별ㆍ기관별로 정년연장, 재고용, 정년폐지 등 정년제도 운영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현재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9만 수준으로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은 `얕고 넓은' 방식으로 운영돼 어느 소득계층의 노인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재구조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재구조화 방안을 마련하게 되면 내년 상반기 중 기초노령연금 장기재정전망 결과에 반영할 예정이다.
자녀의 양육부담을 덜어 적정출산율을 확보하고자 양성평등형 육아 휴직제도와 부성학습휴가제 등을 도입도 검토한다.
육아 휴직제는 장기적으로 한 자녀에 대해 양성이 번갈아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 두번째 육아휴직 사용자에게 더 많은 육아휴직 급여를 주는 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금은 성별과 무관하게 임금의 40% 수준을 주고 있어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임금이 높은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는 경향이지만 제도가 바뀌면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부성학습휴가제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나 어린이집ㆍ유치원 등에서 학습참여 요청이 있으면 아버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매년 일정 기간을 휴가로 부여한다는 것이다.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올해 현재 13.2% 수준인 국공립ㆍ공공형 어린이집을 단계적으로 50%까지 높일 계획이다.
또 장시간 근로 관행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고 업무효율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정책 의지도 강하게 드러냈다.
주40 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을 5인 미만 영세사업체에도 적용하고, 공휴일이 다른 공휴일과 겹치면 그 다음 날을 쉬는 대체휴무제를 시행한다. 연장근로, 다 못쓴 휴가 등을 적립했다가 나중에 휴가로 쓰는 `근로시간 저축휴가제'도 도입할 계획이다.
대학의 인문ㆍ사회ㆍ공학 등 분야별 연구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특성화된 대학의 연구성과에 따라 한정된 재원을 집중 배분해 우수 연구중심 대학을 육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고등학교의 문ㆍ이과 계열통합을 유도하고 대학의 복수전공과 자율전공을 확대해 융합형 인재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문ㆍ이과 계열 구분은 7차 교육과정(1997년)부터 없어졌으나 아직 대입전형에 맞춰 문ㆍ이과 구분에 따른 칸막이식 교과과정을 여전히 운용하고 있다.
또 대학 진학부터 취약계층이 소외되지 않도록 `기회균형선발제'를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대학 입시에서 성적이 다소 낮더라도 취약계층 자녀를 일정비율 선발해 사회계층간 이동성을 높이려는 조처다.
저출산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에 대비해 청년의 입직(入職) 연령을 앞당기고자 고졸 채용 문화 확산 등 `선취업-후진학' 여건을 조성하기로 했다.
우리 기술과 브랜드, 마케팅 등과 중국의 자본이 결합해 중국 내수시장과 세계시장을 공략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에서 창의와 개방에 기초한 `스마트 지식경제'를 갖추는 정책과제로 중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중국자본의 투자를 활성화하고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특히 한국어와 중국어로 수업하는 `한중 연합학교'를 국내에 설립하는 방안을 내놨다. 동반자녀의 연령에 맞춰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등 과정도 개설하기로 했다.
현재 외국인학교(51개)는 주로 영어권 학생 위주이고 중국어 학교 수는 16개에 이르지만 대부분 화교를 대상으로 한 영세학교여서 중국기업 주재원이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중국 특화 투자지역인 차이나 밸리를 조성해 중국의 7대 전략적 신흥산업과 연계한 태양광, 친환경 등 신성장 산업 위주로 중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로 했다.
연구개발(R&D) 정책은 그간 산업기술 개발에 주력했으나 우리 경제의 질적 고도화를 위해 필요한 고령화나 재난, 전염병, 기후변화 등 사회이슈 대응형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15.4% 수준이 사회이슈 대응형 R&D 비중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21.5%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내놨다.
외국인력 도입 시스템을 선진화해 전문 외국인력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방침이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입국 전 포인트에 따라 전문인력에 비자 등 체류자격을 주는 방식을 검토하고 우리나라에 필요한 이공계 등의 인재에 가중치를 두는 방식도 제안했다.
이는 영국이 연령과 학력 등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등급에 따라 체류자격을 주고서 입국 전 근무처 확정 면제 등의 혜택을 주는 제도와 비슷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방안으로는 자유계약 원칙을 존중하되 대기업의 교섭력 우위에 따른 불공정 거래 유인을 줄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부당 단가인하에 대한 손해배상을 3배 이내로 강화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소액주주 집중투표제 활성화와 대기업집단의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등 법과 시장에서의 감시도 강화할 것을 제언했다.
에너지 수급 안정 분야에선 스마트그리드 관련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스마트그리드 핵심기술을 국가중점과학기술로 지정하고, 전기차ㆍ충전인프라, 스마트 가전제품, 스마트홈 등 스마트그리드 가치사슬을 병행 발전시켜 산업생태계를 조성하는 복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 태양광ㆍ풍력ㆍ연료전지를 신재생에너지 3대 전략산업으로 선정해 세계 '톱5' 도약을 추진한다.
화석연료 조세(Burning Tax)를 도입하기로 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율을 점차 확대하고 탄소세를 새로 도입하는 등 과제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훼손하지 않고,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절약을 유도해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하면서 안정적으로 재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 `일본식 장기불황' 가능성은 낮아: 가계부채 관리가능ㆍ경제시스템 개혁가능ㆍ재정여건 양호
정부는 또 경제가 성장해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추세적인 성장률 하락 현상은 일정부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며 일본처럼 장기 불황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도 초기에는 추격형 모델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정 수준(평균 1만6740달러)에 이르면 성장률이 하락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특히 일본은 주요국 가운데 1970년의 기준으로 하면 가장 큰 폭의 성장률 하락추세와 1990년대 이후 장기간 성장이 정체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일본의 이 같은 저성장은 ▲인구감소와 고령화 대응 지연 ▲과거의 따라잡기식 경제시스템 ▲탈공업화 사회를 뒷받침할 서비스업의 경쟁력 강화 실패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는 급격한 고령화로 잠재성장률 하락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가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것이란 비관적 견해가 있지만 경제여건 차이 등을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특히 고령화 대책 등 구조적 개혁을 선제적으로 추진하면 일본과 달리 지속적인 성장세도 유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정부가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근거로는 우선 일본에 비해 `자산 버블'의 붕괴 가능성이 낮고 가계부채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어서 선제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리스크 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이란 점을 꼽았다.
두 번째 이유로는 일본에 비해 인구가 작아 수출주도형 경제가 불가피하며 글로벌 경쟁에 노출될 수 밖에 없어 지속적인 경제시스템 개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불리한 구조가 오히려 일본 기업이 가진 폐쇄성이나 자국기업끼리의 수직적 분업 관행과 달리 글로벌한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적으로 양호한 재정여건을 제시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점을 기준으로 정부부채 비중은 일본이 72.45%였지만 우리나라는 33.43%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