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서울고법 형사7부는 지난 달 15일 부실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해 그룹에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로 기소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했다. 김 회장의 변호인 측이 무죄를 주장하며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해야 한다는 변론을 펼쳤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화그룹 전체의 구조조정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저질렀다고 하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듯이 성공한 구조조정이더라도 이미 저지른 위법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는 기업소유 부동산이나 기업의 가치를 임의로 조작하는 등 적법절차를 갖추지 못하였다"고 판시했다. 즉, 경영판단의 원칙은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친 경영'에만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와 관련, 윤경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이사 등 경영진이 당해 상황에서 합리적인 정보를 가지고 적합한 절차에 따라 회사의 최대 이익을 위하여 신의성실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면 그 의사결정 과정에 현저한 불합리가 없는 한 그 경영판단은 허용되는 재량범위 내의 것으로서 형사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법령에 위반하거나 절차에 위법이 있는 경우라면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 경영상 판단까지 배임죄를 적용해야 하나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회사의 이사나 임원들이 선의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다하고 그 권한 내의 행위를 했다면, 그 행위로 인해 비록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회사에 대해 그 개인적인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미국의 판례법에서 발달한 이론으로 우리나라 상법에는 아직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한 명문규정은 없다.
윤경 변호사는 "경영상 판단과 관련해 경영자에게 배임의 고의와 불법이득의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 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 발생의 개연성과 이익 획득의 개연성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해볼 때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 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인식이 없는데도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단순히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윤경 변호사는 "경영자의 경영상 판단에 관한 사정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법령의 규정, 계약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구체적 상황과 자신의 역할, 지위에서 당연히 하여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했다면 그에 관한 고의 내지 불법이득의 의사는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 경영 판단과 배임 사이의 한계 '모호'
현행법상 배임행위는 형법, 상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으로 처벌된다.
하지만 법이 경영진의 위법한 행위에 대한 처벌을 넘어서 고도의 경영 판단에 따른 실패까지 통제하는 식으로 시장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면, 자유시장 경쟁체제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 기업인은 자유롭게 경영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려 한 행동이 아닌 이상 적어도 형벌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배임죄는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해 기업인들의 활동을 크게 제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무 이득이 없었던 경우는 물론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다만 손해 발생의 위험이 있었다고 평가되는 경우, 심지어 결과적으로 기업에 이익이 된 경우까지 '임무를 위배했다'고 해 배임죄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임무 위배의 고의가 없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해 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영상 판단에 따른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고, 경영자가 당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윤경 변호사는 "기업의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되어 있어 경영자가 아무런 사적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선의에 기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되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더라도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까지 배임죄의 책임을 묻는다면 정책적인 차원에서 볼 때 영업이익의 원천인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어 당해 기업은 물론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