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1,524회의 독립선언 집회가 열렸다. 국내에서 큰 파급력은 남긴 3.1운동은 이후 한국민족사는 물론이고 세계사에서도 큰 영향을 끼친 독립운동이 되었다.
◎ 3.1운동 이후의 한국
3.1운동 이후 일제는 식민지 무단통치와 한민족 말살정책에 대한 한계를 실감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일제에 항거하라"는 독립선언문 공약 3장의 위력엔 아무리 일제라도 무력으로만 밀어붙이기 한계가 있었다. 세계에 일본의 추태가 알려졌다는 점 또한 일제를 초조하게 했다.
이후 일제는 한민족의 언론?출판?집회?결사에 대한 최소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문화정치'로 통치노선을 변경했다. 이는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회유하고 분열시키려는 식민정책으로, 이전과 같은 무력통제는 줄었으나. 3.1운동과 같은 대규모 투쟁이 지속되지 못했다는 점, 친일파의 득세로 민족분열이 가속화했다는 점은 일제 강점이 고착화 되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역량은 3.1운동 이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 했다. 조선독립신문 제 2호는 임시정부의 조직에 대해 "가정부조직이 일간 국민대회를 열어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임시대통령을 선거했다"고 보도했다. 조선독립신문은 윤익선, 이종일 등 3.1운동의 주체세력에 의해 발행된 신문이다. 3.1운동의 주체세력에 의한 임시정부 수립은 곧 민족정권을 계승한 정통 정부의 설립이며, 이는 임시정부가 당시 국민들과 독립운동 단체의 지지를 받는데 일조했다.
3.1운동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에 입대했으며, 만주의 이주민 동포도 자제들을 기꺼이 독립군에 보내 독립군은 단시일내 편성을 마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 3.1운동을 통해 한민족은 자주독립을 세계에 선언했고, 이를 통해 일본이 패전국이 될 때 자동적으로 독립되는 것으로 전세계에 공인받았다. 1차 세계대전 종전 시 한국 대표들이 국제열강 회의에 참석도 못했던 데 반해, 2차대전이 끝난 뒤의 국제회의에선 한국대표의 참석 없이도 한국이 독립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논의되었다. 3.1운동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즉, 3.1운동은 이후 한국의 독립과 자주국가로 첫 발을 나서는데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3,1운동 이후의 세계
현대 중국의 탄생으로 불리우는 5.4운동엔 3.1운동이 큰 영향을 주었다. 5.4운동의 추진자들은 한국의 3.1운동을 격찬했으며, 이에 고취와 영향을 받았음을 증언하는 다수의 기록을 남겼다. 당시의 중국 언론들도 3.1운동의 봉기와 진전을 크게 보도해 중국 국민을 자극했다.
중국 언론의 보도와 논평은 5.4일부터 5.6일 까지 20회 이상 게재되었으며, 영자 신문인 '북경 데일리 뉴스'의 3.1운동에 대한 상세한 보도가 중국의 지식인과 세계인들에게 3.1운동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명망있는 북경대 교수던 진독수는 '조선독립운동지감상'이란 논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의 조선독립운동은 위대하고 성실하고 비장하며 명료하고 정확한 생각을 갖추고 있다. 민의(民意)를 사용하고 무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참으로 세제혁명사에 신기원을 열었다. 우리들은 이에 대하여 찬미·애상·흥분·희망·참괴(?愧) 등의 여러가지 감상을 갖는다. 우리는 조선인의 자유사상이 이로부터 계속 발전할 것을 희망한다. 우리는 조선민족이 독립자치의 영광을 멀지않아 성취하고 발견할 것을 굳게 믿는다. ......조선민족의 활동의 영광스러움에 비추어 우리 중국민족의 위비(萎靡)하고 부진(不振)함의 치욕이 더욱 드러진다. ......"
"보라! 이번의 조선인의 활동을! 무기가 없으니까라고 하여 반항도 감행하지 않는가, 어떤가. 주인공의 자격을 방기하여 제3자로 되는가, 어떤가. 조선인에 비하여 우리들은 참으로 참괴(?愧)를 금할 수 없다."
3.1운동에 감명을 받은것은 비단 중국뿐만이 아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3.1운동 직후 스승인 '라빈드라나드 타골'의 정신적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인 인도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타골은 10년 뒤인 1929년 당시의 감상을 다음과 같은 노래로 적었다.
일찌기 아시의 황금시대에
등불의 하나이었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3.1운동의 영향은 인도차이나 반도와 필리핀, 아랍에까지 파급되었다. 베트남의 독립운동, 필리핀 마닐라의 독립시위 운동, 이집트 카이로의 독립시위 운동 등 전 세계적인 독립시위 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는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약소민족 해방투쟁이 불타오른 결과였다.
한민족의 3.1운동은 전세계 악소민족 해방운동사에, 독립운동사에 새로운 시대, 신기원을 열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