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6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단하면서 앞으로 개별 사업장들의 임금피크제 운용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는 시점부터 임금을 점차 깎는 대신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되기 전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고령 근로자에게 명예퇴직, 권고사직 등을 할 수 있었다. 이는 근로자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하고 노인 빈곤 등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고령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명예퇴직, 권고사직 등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일부 사업장에만 적용되던 임금피크제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것은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2016년 시행)으로 노동자의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늘면서다.
박근혜 정부는 '60세 정년' 의무화를 앞두고 노동 개혁의 일환으로 임금피크제 확대에 힘을 쏟았고 모든 공공기관이 2015년 말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했다.
300인 이상 사업체 중 임금피크제를 운용 중인 곳의 비중은 2015년 27.2%에서 2016년 46.8%, 2017년 53.0%, 2018년 54.8%, 2019년 54.1%로 증가했다.
임금피크제의 유형은 정년유지형, 정년연장형, 고용연장형 등으로 다양하고 사업장별로 도입 형태가 다를 수 있다.
노동부는 이번 판례가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의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형이 아닌 정년유지형이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은 정년연장형을 채택하고 있다. 퇴직을 앞둔 근로자들의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임금도 삭감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건강보험공단 등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는 판례는 이미 나와 있다"고 전했다.
이번 판결 속 사례에서 근로자에게 적용된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으로, 이 근로자가 임금피크제 적용 이전에 해오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도 임금이 깎인 것이 문제가 됐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1991년 B연구원에 입사한 뒤 2014년 명예퇴직했다.
연구원은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2009년 1월에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A씨는 2011년부터 적용 대상이 됐다.
A씨는 임금피크제 때문에 직급과 역량등급이 강등된 수준으로 기본급을 지급받았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손익찬 변호사는 "나이가 많아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면 그에 맞게 보직을 바꾸거나 현업에서 물러나 임금을 적게 받는 것이 임금피크제의 일반적인 형태"라며 "하지만 A씨는 임금피크제 적용 전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이 삭감됐다"고 설명했다.
임금피크제는 고령층의 실업을 완화하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고 고령층의 숙련된 업무 능력을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업이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낮추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이번 사건의 피고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 정부와 노동계의 해석이다.
앞으로 임금피크제 개별 사례와 관련한 법원과 정부의 판단은 임금 삭감에 걸맞게 업무량 또는 업무강도 저감 등이 있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임금피크제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판례를 참고해 임금피크제를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판결의 피고 회사는 임금피크제를 굉장히 특이하게 적용한 사례"라며 "앞으로 기존 지침을 유지하되 이번 판례를 참고해서 사례별로 임금피크제 운용의 적절성을 판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