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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가스치료 한평생..윤덕로교수 별세

평생을 연탄가스 중독 치료에 몸바쳐 온 윤덕로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명예교수가 1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고인의 가장 큰 업적은 지난 1969년에 국내 처음으로 개발한 연탄가스 중독 치료장비다. 윤 교수가 `고압산소장치'로 이름붙인 이 장비는 수십 년에 걸쳐 전국 병원에서 사용돼 수만 명의 연탄가스 중독환자를 살려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당시에는 대부분 가정이나 공장, 회사에서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시절인지라 해마다 70만건 이상의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있었다. 치료법으로는 동치미 국물을 마시거나 아스피린을 처방받아 먹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때문에 한해 3천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구사일생한다고 해도 팔다리마비나 언어장애 등의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연탄 난방 비율이 약 75%에 달했다고 하니 일산화탄소 중독이 얼마만큼 빈번했을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윤 교수는 1960년대 초 공군 군의관으로 근무할 당시에 접하게 된 외국의 고압산소장치를 응용해 1967년 동물임상용 고압산소장치를 개발했다. 외국에서는 이 고압산소장치가 감압병(잠수병) 환자나 탄광, 공장 등에서 일하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환자에게 주로 사용됐었다.

고인은 이후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1969년 1인용 구조장치 개발에 성공해 특허를 냈으며, 이 장치 200여대를 전국의 병원에 공급해 연탄가스 중독환자를 살려냈다. 이후에는 10명의 연탄가스 중독환자가 함께 들어가 치료받을 수 있는 10인용 고압산소장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장치는 연간가스 중독환자가 누운 상태에서 고압산소를 들이마실 수 있게 고안된 챔버 형태의 장치로, 맨 처음 개발된 장비는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 기증돼 전시 중이다. 연탄가스 중독환자가 이 장치에 3시간 정도 들어가 있으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느니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구명장치였던 셈이다.

고인은 80년대 중반 연탄 사용량이 급격히 줄어든 이후에도 일산화탄소 중독 연구에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으며, 서울대병원 인근 `낙산'의 빈민가를 직접 찾아다니며 연간가스 중독사고에 대한 역학조사와 실태조사를 벌여 수백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이 같은 전문성 때문에 고인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비행사고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조종사들의 일산화탄소 중독 예방책을 마련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장남인 윤익진 건국대병원 외과 과장과 차남인 윤태진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외과 과장 등이 있다. 평생 연탄가스 중독환자를 살려내는데 몸바치며 `의술이 인술'임을 몸소 실천해 온 고인을 뜻을 자식들이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고인의 제자인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강대희 교수는 "고인은 의사로서 40여년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연탄가스 중독 환자를 치료하는데 몸바치신 분"이라며 "환자의 진단부터 치료까지 평생을 발로 뛴 예방의학자의 표본"이라고 말했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영안실 202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5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납골공원.(☎02-2030-7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