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에서 살던 두 형제가 있었다. 이들은 고아원에서 나온 후 서로 의지하며 야간 작업을 통해 재물을 열심히 모으고 있었다. 이들의 야간 작업은 바로 야심한 밤, 벽 타고 담 넘어 부패로 재물을 쌓은 집 금고를 터는 일.
백종민, 여호민, 유건, 전세홍, 이언정 등 전부 연기자들이 모여서 만든 연극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바로 '도둑놈 다이어리'. 이 날은 승규, 백종민, 전세홍, 이나경이 출연해 코믹한 상황극을 연출했다.
크지 않지만 아담하게 꾸며진 무대, 생각보다 관객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내용은 도둑을 일삼는 도두칠(승규)과 도정노(백종민) 두 형제와, 이들의 돈을 탐내 집에 들어와 살게 된 미모의 여인 마동나(전세홍), 동생 정노에게 반해 자존심도 모두 버리고 일편단심 좇아다니는 미용집 아가씨 마희진(이나경). 동생이 형의 혼사문제를 걱정해 생각해낸 빤짝 아이디어, 즉 남는 방에 공짜로 예쁘고 몸매 좋고 결격사유가 없는 젊은 여성을 들이자고 주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의 광고를 보고 등장한 모든 조건을 갖춘 아가씨가 바로 우리의 여주인공 마동나(전세홍).
문제는 이 결격 사유가 없는 마동나가 이들이 훔쳐 온 저 금고안에 있는 '세종대왕'님만 노리고 있다는 것. 마동나는 천방백계로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하고 기회를 엿봐 돈을 갖고 도망가려고 한다. 동생 정노와 형 두칠은 모두 섹시하고 달콤한 여인 마동나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챈 동생은 형에게 마동나를 경계하라고 권고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 두 형제를 빼곤 믿을 사람 한 사람도 없다'고 동생을 가르쳐왔던 두칠은 마동나에게 반해 '그녀의 마음만 훔칠 수 있었으면'라는 '흑심'을 품게 되고 급기야 반지를 선물하며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하는데... 과연 두칠은 그 순정으로 마동나의 마음을 훔칠 수 있을까?
100분 동안 이어진 연극은 출연자가 오직 네 명뿐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유쾌, 발랄, 코믹하고 매끄럽게 이야기가 전개돼 나갔다. 특히 '미안한 얼굴의 소유자' 두칠 역 승규는 특유의 표정과 눈빛에서 최고의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안정되고 자연스런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노 역 백종민은 잘 생기고 머리 좋지만 성격은 버럭버럭, 그러나 때로는 애교만땅의 '닭살남'으로 등장해 많은 여성관객의 열렬한 호응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전세홍은 섹시하거나 살벌하게, 이나경은 귀엽거나 순진하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회 현상을 폭로하고 인간의 깊은 내면을 조명하는 것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시작에서 끝까지 이어지는 코믹바이러스. 무식한 두칠의 '춘추가 무엇이냐?', '감기(개)무량하다' 등 무식한 대사는 물론, 특히 고스톱을 치다가 지게 되어 돈이냐 벌칙이냐에서 '절대 돈을 줄 수 없다'며 도둑정신을 여실히 보여주던 두칠의 고집으로 정노도 함께 상반신 노출에 이어 팬티까지 벗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모든 관객을 배꼽을 쥐어짜며 포복절도케 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배우들의 연기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는 점. 또한 이들이 왜 도둑이 되고 왜 꽃뱀이 됐는지를 독백식으로 이야기 하는 장면이 좀 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백을 통해서도 충분히 그 상황에 빠져들고 공감이 되어야 할텐데 그런 감동이 덜했다. 게다가 그렇게 악바리 같게 살아온 꽃뱀이 아무리 진심어린 고백이라고 하지만 도둑놈의 몇 마디 말에 무너져내리는 장면에서는 어쩐지 설득력이 미흡했다는 생각. 하지만, 마희진이 갑자기 돈에 눈이 멀어 정노에게 칼을 들이대는 장면은 나름 재미있었다. 그래, 사람이란 돈 앞에서 이성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아무리 순수한 사랑이었어도 말이다. 사람을 지고지순하게 만화같이 그려내지 않은 연출님의 안목에 오히려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극장을 나서면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 "이 세상에서 내가 훔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