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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은행부문 한정해 구제금융 신청

[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스페인이 은행권의 유동성 위기 해결을 위해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고 dpa·로이터통신이 9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 가운데서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 이어 4번째로 구제금융을 받게 된다. 경제규모로는 이들 4개국 가운데 스페인이 최대이다.

구제금융 자금은 스페인의 은행 부문에 한정돼 직접 투입되며 지원된 자금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스페인 정부가 상환 책임을 지게 된다.

스페인 정부는 은행 유동성 문제와 관련 외부 도움없이 스스로 자본확충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유로존에 손을 내밀면서 손을 들었다.

스페인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이 유로안정화기구(ESM)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가운데 하나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며, 이 가운데 운용방식에서 좀 더 신축성이 있는 ESM을 통하는 방법이 선호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앞서 구제금융을 받은 3개국에는 구제금융의 제공 조건으로 재정 긴축을 비롯한 혹독한 개혁조치가 요구됐지만 스페인에게는 이 같은 조치가 요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루이스 데 귄도스 스페인 경제장관은 이날 유로존 재무장관 긴급 전화회의 후 기자회견을 갖고 "스페인 정부가 유로존 국가들에 은행 분야에 필요한 구제금융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조건은 현재의 금융시장 상황에서 가능한 것보다 우호적"이라면서 "여하한 형태의 재정(긴축) 조건들이 없다. 재정 시스템을 개혁해야 하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요청한 것은 금융지원이다. 구제금융과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은 은행권의 불안이 스페인 위기의 핵심이라는 진단에서 전적으로 은행 자본확충에만 한정된다는 점에서 기존 구제금융과 다르다.

스페인 은행들은 2004~2008년 주택값이 총 44% 급등한 `부동산 붐'에 주택대출에 열을 올렸다가 거품 붕괴로 망가졌다. 특히 제3위의 은행인 방키아 은행이 지난달 190억유로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스페인의 구제금융 요청설이 확산됐다.

물론 유로존이 제공하는 자금을 받을 은행들에는 공적자금 투입에 따르는 개혁조건들이 적용되지만 이런 조건들은 이미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들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유로존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스페인에 매우 유리한 조건의 구제금융 지원을 허용한 것이다.

유로존 재무장관들도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구제금융 규모는 최대 1천억 유로(미화 1천25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며 "구제자금을 제공받는 스페인의 은행부문이 개혁을 이행할 것으로 기대하며 스페인이 기존에 약속했던 노동시장의 개선과 재정 적자 감축 등을 지켜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1천억 유로는 스페인 은행 시스템의 안정에 필요한 자본확충 소요자금과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예비자금 등을 합쳐 추산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IMF가 판단하는 스페인 유동성 해결을 위한 자본수요와 일치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스페인측에 "구제금융 요청액을 당장 구체적으로 밝힐 것"을 요구했으나 스페인이 강하게 반발, 추후 액수를 확정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귄도스 장관은 은행부문의 자본확충 필요규모를 산정하기 위한 컨설팅회사들의 실사작업이 끝나는 21일까지는 구제금융 신청액수를 구체적으로 확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딜로이트 등 외부 컨설턴트업체들이 실시하는 은행에 대한 외부감사 내용은 내달 31일 나온다.

또 "금융지원은 은행 자본확충을 위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또는 유로안정화기구(ESM)에서 제공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ESM은 EFSF를 대체해 오는 7월 가동된다.

EFSF나 ESM에서 지원될 자금은 스페인이 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운영중인 `질서있는 은행 구조조정 펀드(FROB)'에 직접 투입된다.

물론 FROB에 투입된 자금은 스페인 정부의 부채가 된다. 스페인의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8.5%(2011년 말 기준)다. 아울러 지원 자금에 대한 이자는 스페인 정부의 부담이다. GDP 대비 8.9%인 스페인 재정적자에 구제금융 이자비용이 더해진다.

만일 자금지원주체로 ESM이 결정되면 이 돈은 스페인 국채에 비해 우선 상환순위를 갖는다. 혹시 스페인이 국가부도에 이를 경우 ESM이 스페인 국채를 보유한 민간투자자들보다 먼저 빚을 상환받는다는 뜻이다.

한편, 이번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는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방식에 국제통화기금(IMF)이 어느 정도로 관여할 것인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으며, 스페인은 IMF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IMF는 자금지원에서 빠지고 유로존에서 구제자금을 제공하되 IMF가 은행부문의 개혁을 모니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유로존 회원국들은 스페인이 약속한 포괄적인 개혁안의 이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합의됐다.

앞서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은행권의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에 대비해 긴급 전화회의를 개최했으며, 유럽 국가들로부터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하라는 압박을 받은 스페인은 회의에서 요청 의사를 전달했다.

17일로 예정된 그리스의 2차 총선을 앞두고 스페인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신속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압력이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쪽에서도 강하게 가해졌다.

특히 IMF는 애초 오는 11일 발표할 예정이었던 스페인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 결과를 전날 서둘러 공개하면서 "스페인 은행이 금융 충격을 견디기 위해서는 최소 총 400억 유로 규모의 신규 자금이 필요하다"고 스페인을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