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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 전국 대표번호로 수천억원 통신료 소비자에 전가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은행, 보험, 증권, 카드사 등 고객 전화가 많은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수신자부담전화(080)를 폐쇄하거나 꽁꽁 숨기는 방식으로 연간 수천억 원의 통신료를 고객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발신자인 고객이 통신료를 부담하는 1577-xxxx, 1588-xxxx 등 전국 대표전화만을 운영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이같은 번호가 유료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비용을 떠안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 금융사들이 전국대표번호 도입부에 장시간 자사 광고를 넣거나 복잡한 ARS메뉴로 통화시간이 길어지고 재차 전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소비자들의 비용부담을 키우고 있다.

주요 은행의 콜 횟수가 하루 평균 7만 콜이고 1회 3분가량 통화한다고 했을 경우 은행 1곳당 소비자에게 하루 273만원, 1년에 9억9000만 원가량을 떠넘긴 셈이다. 금융감독원이 공시한 전국 금융기관의 수가 1333개인 점을 감안하면 수천억 원대의 통신료가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최근 컨슈머리서치가 국내 주요 은행(12개사), 카드사(9개사), 증권사(10개사), 보험사(20개사) 등 51개 업체를 대상으로 수신자부담전화 콜센터 운용 실태를 조사, 2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64.8%에 해당하는 33곳이 080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상당수가 최근 3~4년 새 기존에 운영하던 수신자부담 콜센터를 폐쇄했다. 그나마 080서비스를 운용하면서도 이를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명시하고 있는 곳은 전체 금융기관을 통틀어 우리은행 단 1곳뿐이었다. 나머지는 고객이 묻는 경우에만 안내하거나 특정 계층, 특정 상품 카테고리에만 제한적으로 구두 안내하고 있을 뿐이어서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하다.

은행의 경우 080 콜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조사 대상 12곳 중 우리은행, 하나은행,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은행), 외환은행, 수출입은행 등 5곳 뿐이다.

KB국민은행은 소외계층,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콜센터에서 개별적으로 080 수신자번호를 안내하고 있지만 번호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신한은행,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등은 소비자 민원 접수에만 무료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 전화가 가장 많이 몰리는 보험, 증권, 카드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카드사는 KB카드, 외환카드 등 2곳만 080콜센터가 있고, 롯데카드, 비씨카드, 삼성카드, 신한카드, 우리카드, 하나SK카드, 현대카드는 없다.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통해 080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곳도 전혀 없었다.

10대 증권사의 경우 한국투자증권, 하나대투증권 등 2곳만 080번호가 있고 나머지 KDB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삼성증권, 현대증권, 대신증권, 동양증권, 미래에셋증권, 신한금융투자는 수신자부담전화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보험사의 경우 생명보험사 10곳, 손해보험사 10곳 등 총 2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흥국생명, 동양생명, 메트라이프생명 등 생보사 5곳과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한화손해보험 현대해상등 손보사 4곳만 080번호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생명, NH농협생명, 신한생명, 미래에셋생명, ING생명, 동부화재, LIG손해보험, 흥국화재, 롯데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 MG손해보험은 080콜센터가 아예 없었다. 신한생명과 흥국화재는 메인화면에 신규 보험 가입이나 텔레마케팅(TM)전용 상품 문의 카테고리에만 제한적으로 080번호를 안내하고 있다.

◆ 연간 수천억원 통신비용 소비자에 전가

전국대표번호 서비스는 지역별로 산재된 기업 전화번호를 단일 대표번호로 통합한 후 발신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전화번호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로, KT(1588·1577·1899), LG유플러스(1544·1644·1661), SK브로드밴드(1566·1600·1670), 온세텔레콤(1688·1666), SK텔링크(1599), KCT(1877), CJ헬로비전(1855), 티온텔레콤(1800) 등이 운영 중이다.

이용 요금은 대부분 일반전화의 경우 시내, 시외 구분 없이 시내통화요금(3분당 39원)을 기준으로 발신자에게 부과되고, 070인터넷 전화나 휴대전화는 이용자의 요금제를 기준으로 계산된다.

금융기관들은 전국대표번호 수신 도입부에 긴 광고멘트를 넣고 있으며 ARS가 메뉴가 복잡해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에 도달하기까지 긴 시간이 지체되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은 전화료 바가지를 쓰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통신업체 관계자는 "지난 2010년 이후 3년 새 전국대표번호 회선은 12.2% 늘어난 반면 080회선은 16%가 줄었다"고 밝혔다.

금융기관들은 워낙에 콜 수가 많아 080서비스를 운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시중 은행의 한 관계자는 "수신자부담을 했을 경우 비용을 사실상 감당하기 힘들어 대부분 080번호를 폐쇄하거나 공개적으로 안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콜센터 상담원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요청하면 바로 전화를 걸어 상담해주는 콜백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어 080번호가 없더라도 큰 불편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현숙 컨슈머리서치 대표는 "금융기관들이 080번호를 없애며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전국대표전화가 유료서비스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이용하는 경우가 태반이다"며 "금융기관들이 080서비스를 폐쇄하려면 전국대표전화 도입부에 통신료가 발생된다는 사실이라도 공지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