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에 따른 시행령 개정 계획을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등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된 개정령안의 주된 내용은 총수일가의 직접보유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회사 및 20% 이상인 비상장회사의 경우 계열사간 거래를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기준을 적용할 경우 총 208개 회사(상장 30개 회사, 비상장 178개 회사)가 규제의 적용을 받을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이번 공정위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미 국회를 통과한 모법을 기준으로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현실적 제약, 그리고 최근 경제민주화 의지의 후퇴로 요약되는 박근혜 정부 전체의 분위기 변화 등을 감안하다고 하더라도, 현 시행령 개정(안)에는 보완해야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입법예고기간 중에 개혁적 의견을 적극 반영해 보다 실효성 있는 시행령 개정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을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는 공정위의 집행 의지임을 재삼 강조하면서,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시장경제 파수꾼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할 것을 촉구한다.
국회를 통과한 일감 몰아주기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그간 재계의 로비를 수용한 결과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는 법안이 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두 가지다. 첫째, 총수일가가 간접지분을 보유한 경우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적용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직접지분을 보유한 경우에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비율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그 대상을 대폭 축소한 점, 둘째, 기업의 효율성 증대, 긴급성, 보안성 등 거래의 목적 달성을 위한 경우를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적용제외 사유로 인정한 점 등이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한 규제의 실효성 저하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먼저,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적용대상을 총수일가의 직접보유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회사와 20% 이상인 비상장회사로 이원화했다. 규제대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총수가 없는 기업집단을 제외한 43개 기업집단 소속 1519개 회사 중 총수일가가 1주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는 총 405개사(상장 149개, 비상장 256개)인데, 공정위 안을 적용할 경우 상장회사는 30개사(전체 상장회사의 13.1%), 비상장회사는 178개사(전체 비상장회사의 13.8%) 등 총 208개 회사가 규제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는 총수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 405개사의 51.4%에 해당하는 것이다.
상장회사와 비상장회사의 적용기준이 다른 이유에 대해 공정위 측은 상장회사의 경우 정보공개가 비교적 잘 이루어지며, 대부분 내부통제 장치가 있어 주주들에 의한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므로 비상장회사와 반드시 동일하게 규율할 필요가 없고, 또 현실적으로 사익추구는 총수일가 등이 비상장회사를 통해서 행해지고 있으므로 비상장회사는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논리 자체는 일응 타당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또 총수일가의 직접보유 지분율이 20~30%인 20개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지금 당장은 일감 몰아주기의 폐해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상장회사에 대해 30%의 지분율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20개 상장회사는 금호석유화학, 동국제강, 동부화재해상보험, 롯데쇼핑, 삼성생명보험, 신세계, 신세계인터내셔날, 이마트, 예스코, 가온전선, 엘에스, 영풍, 영풍정밀, OCI, GS건설, 태광산업, 태영건설, 하이트진로홀딩스, 한라건설, 효성 등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직접보유 지분만이 아니라 간접보유 지분까지 포함해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20% 이상인 경우로 규제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에 비해,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안)은 그 범위가 너무 축소된 것이다.
더구나 상장회사와 비상장회사를 구분하여 다른 지분율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향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우려된다. 그것은 공정위가 재계에 잘못된 신호를 전달함으로써, 재계로 하여금 규제준수 유인보다는 규제완화 로비 유인을 강화하는 했다는 점이다.
즉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20~30%인 상장회사 수가 많지 않고 또 일감몰아주기 폐해 사례도 두드러지지 않는다면, 공정위는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20%의 동일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불필요한 규제비용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했었어야 한다. 그런데 공정위는 상장회사에 대해 30%의 완화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재계가 비상장회사에 대해서도 기준을 30%로 완화할 것을 요구하도록 하는 빌미를 스스로 제공하고 말았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재계는 규제 기준을 50%로 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재계는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안)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더 로비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며, 그 대상은 비상장회사에 대한 기준 완화에 모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공정위가 시행령 개정(안)조차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 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문제점인 효율성, 보안성, 긴급성 등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적용제외 사유에 대한 판단에서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안)은 각각의 항목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예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공정위가 상당한 정도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적용제외를 인정하겠다는 의도로 읽히는 부분이지만, 효율성, 보안성, 긴급성 등 '정당한 사유'의 입증책임을 누가 부담하는가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공정위가 사익편취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가 발생했다고 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우선적으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거래였다고 항변할 것이고, 결국 법원에서 '정당한 사유'에 대한 판단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당해 회사가 정당한 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공정위 조사과정에서 이러한 사정들을 감안하여 기업들의 항변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는 현재 공정위의 업무처리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법원의 판단을 받기 전에 공정위가 '정당한 사유'의 요건을 완화해 적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행령으로 적용제외의 인정 기준을 규정하고 있으나, 결국 적용제외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여부는 공정위의 의지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공정위가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집행을 하느냐가 이번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전체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판단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많은 논란 끝에 미흡한 형태로 확정됐다. 이 과정에서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이미 국회를 통과한 만큼 향후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됐다. 이를 위해서는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재계가 잘못된 유인을 갖지 않도록 공정위의 법집행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고, 실제 사안에서 엄정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은 공정위의 의지에 달렸고, 지금 당장 재계의 규제완화 로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그동안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가 만연됐지만 적절한 규제가 없었던 것을 감안할 때,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국회 통과에 따라 공정위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도 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렵게 신설된 규제인 만큼, 공정위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법집행에 최선을 다하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