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의 당정협의에서 새누리당은 지난 7월 본회의 통과한 일감몰아주기 규제 법률안의 시행령 마련과 관련, 개정된 법률안의 실효성을 대폭 떨어뜨리는 요구를 했다.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를 통과한 법안이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법안 통과의 의미를 무력화하려는 새누리당이 이제는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최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 후퇴 움직임에 더해, 이번 일감몰아주기 규제 법안 무력화 시도는 정부여당의 경제민주화 사기극의 일환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새누리당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총수일가의 지분율 관련, 공정위가 마련한 안(상장회사 30%, 비상장회사 20%)보다 지분율을 각각 40%, 30%로 상향 조정하고, 규제 대상이 되는 내부거래 기준에 대해서도 공정위 안(내부거래 비중 10% 이상이거나 금액 기준 50억원 이상)보다 훨씬 완화한 각각 20% 이상과 200억원 이상을 기준으로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총수일가의 지분율 기준을 공정위 안에서 새누리당 안으로 변경할 경우 규제 대상 기업이 총 208개사의 상장 및 비상장 회사에서 100여 개 회사로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새누리당은 부당이득의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시행령에 명시해 공정위의 합리적인 재량 판단을 원천적으로 막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법률에서 일감몰아주기의 기준을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했기 때문에, 이제는 일감몰아주기의 기준은 행정부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애초에 본회의를 통과한 일감몰아주기 규제 법률안도 새누리당의 완강한 반대로 각종 규제 회피책을 만들어 실효성 논란이 거셌다. 새누리당은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이제는 정부의 고유 권한에 속하는 시행령의 기준까지 간섭해 재벌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민주당 정무위원회 위원들과의 면담에서 총수일가 지분율 기준에 대해서는 공정위 원안을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나머지 다른 새누리당의 요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 표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일감몰아주기는 안 된다는 합의가 적당한 수준의 일감몰아주기는 괜찮다는 것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