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대법원 민사2부는 최근 소액주주들이 신세계 전·현직 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패소의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실망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동일 업종의 완전 모자회사에서 의도적인 실권, 총수일가의 실권주 저가 인수에 이르는 전형적인 회사기회 유용의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형식적인 논리에 얽매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사들의 책임을 배척한 전형적인 '봐주기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사건은 신세계가 100% 지분을 보유한 완전자회사인 광주신세계의 1998년 4월 유상증자 과정에서 저가로 발행된 신주를 인수하지 않아 입게 된 손실과 관련, 2008년 4월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 등 소액주주들이 당시 실권에 책임이 있는 신세계 전·현직 임원들과 실권주를 전량 인수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긴 정용진 부회장(당시 신세계 등기이사)을 상대로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것을 청구한 건이다.
쟁점은 신세계의 등기이사인 정용진 부회장이 100% 자회사인 광주신세계의 실권주를 인수해 최대주주의 지위를 취득한 것이 회사기회의 유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상법 제398조에 정한 자기거래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이었다. 소액주주들은 정용진 부회장이 실권주를 인수해 광주신세계의 지배주주가 됨으로써 신세계는 광주지역에서 백화점을 영위할 사업기회를 잃었고, 이는 정용진 부회장이 신세계의 브랜드와 노하우를 이용한 것이므로 전형적인 회사기회 유용의 사례로 판단했다.
또 신세계 이사인 정용진 부회장이 신세계의 완전자회사인 광주신세계의 실권주를 인수하는 것이 비록 신세계와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경제적 실질에 있어서는 사실상 신세계와 거래하는 것과 동일한 간접거래에 해당하므로 자기거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더욱이 당시 실권주 인수거래는 신세계 이사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법령위반도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1, 2심 재판부는 정용진 부회장이 인수한 주식은 신세계의 주식이 아닌 광주신세계가 발행한 신주이기 때문에 정용진 당시 이사의 자기거래로 볼 수 없으며, 회사기회 유용 금지 원칙이 이사의 선관주의 또는 충실의무의 한 형태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사가 회사기회를 유용한 것으로 인정되려면 유망한 사업의 기회가 존재했고, 그 사업기회가 이사에 의하여 유용된 것으로 인정돼야 하지만, 광주신세계의 신주 발행 당시 재무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유망한 사업기회도 아니었고, 정용진 당시 이사가 회사기회를 '유용'한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경영판단의 원칙 등을 고려할 때 실권을 결정한 이사들의 결정이 회사에 대한 임무 해태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라고 봤다.
정용진 부회장의 광주신세계 실권주 인수 당시 광주신세계는 신세계가 100% 지분을 보유한 완전자회사였다. 따라서 광주신세계의 실권주 처분은 실질적으로 모회사인 신세계의 보유자산을 처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신세계 이사였던 정용진 부회장이 실권주를 인수한 것이 상법상 자기거래에 해당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형식적인 논리만을 들어 신세계와 광주신세계는 다른 법인이므로 자기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을 도외시 한 것이거나 피고 측에 유리하게 판결을 내리기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특히 회사기회 유용과 이사의 임무해태에 대한 판단과 관련, 법원은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경영상의 판단으로 실권했다는 피고 측 주장만을 인용하고, 광주신세계의 유상증자가 처음부터 모회사인 신세계의 동의와 참여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축했다.
이와 관련해 2012년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상법 제397조의2는 회사기회 유용을 금지하는 명시적인 규정을 신설해 이사가 직무상 알게 된 회사의 정보를 이용하여 자기 또는 제3자에게 이익을 취득시키는 행위를 금지시켰는데, 이는 기존 '충실의무' 규정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분명하게 이사의 책임을 물을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이 조항은 경과규정 없이 시행됐고, 따라서 법 시행 이전의 행위에 대해서도 소급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사법부가 처음으로 개정 상법의 회사기회 유용 금지 규정을 적용할 여지가 있었지만, 대법원은 이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작년 이래의 경제민주화 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단연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규제방안이었다. 그 중 하나가 회사기회 유용 문제였고,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 사례 및 SK그룹의 SK C&C 사례와 함께 가장 전형적인 예로 언급되었던 것이 정용진 부회장의 광주신세계 사례였다. 이러한 사익편취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상법 개정에 이어 상증세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 작업이 이뤄졌다.
하지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규제를 위한 법률 규정이 신설된다고 하더라도 사법부의 엄정한 판단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개정 상법이 시행되기 전인 지난 2011년 초 현대자동차 주주들이 정몽구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공정위 사건) 판결에서 1심 법원은 현대글로비스 설립과 관련해 회사기회 유용 문제에 대해 기존 상법의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적용할 여지는 있다고 봤지만, 글로비스의 설립이 현대차뿐 아니라 그룹 전체의 사업기회로도 볼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그 적용을 배척한 바 있다.
이후 회사기회 유용 금지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상법에 신설됐고 그 소급적용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광주신세계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회사기회 유용 규정을 적용할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대표적인 회사기회 유용 사례라 할 수 있는 광주신세계 사건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배척된 것이다. 이는 사회의 변화와 그에 따른 시대적 요구에 대해 법원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원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