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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의 고민…작년 5월 김중수 판박이 되나

"현 통화정책도 완화적이지만 더욱 완화적으로 만들 만한 이유가 있다. 국제 금융시장과 각 나라 정책금리 수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추경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작년 5월 9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2.50%로 내리기로 결정한 뒤 김중수 당시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끝내고 제시한 인하의 이유다.

그 한달여 전인 지난해 4월 초부터 당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현오석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여당과 정부 관계자들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추진하면서 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예를 들면 "한은이 금리를 추가로 내려주면 더 좋다"(조원동 수석), "4월에는 동결했지만 5월에는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본다"(이한구 원내대표), "금리를 포함해 정책은 늘 패키지에서 시행해야 한다"(현오석 부총리)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한은은 지난해 4월 11일 총액한도 대출(현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만 3조원 늘리고 금리는 내리지 않았다.

5월 금통위가 열리기 나흘전까지도 김 총재는 기자들에게 "지난해 내린 0.5% 포인트도 굉장히 큰 것이다. 한국이 기축통화를 쓰는 미국, 일본도 아닌데 어디까지 가란 것인가"라고 반문, 금리를 동결할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하지만 5월 9일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내려졌고, 김중수 총재는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오는 14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이주열 총재의 상황이 작년 5월 김중수 당시 총재 때와 판박이다.

여당과 정부 측의 금리 인하 요구가 이어졌고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3조원 증액한 것까지 똑같다.

이 총재는 올해 4월 취임 때 시장과의 소통 강화, 신뢰 회복 등을 강조하면서 향후 기준금리의 방향에 대해 선제적인 안내를 하려는 듯 통화정책이 앞으로 인하보다는 인상 쪽에 무게중심이 있음을 시사해왔다.

5월 4일 카자흐스탄 출장 때는 기자들에게 성장률 전망이 유효하다는 것을 전제로 "방향 자체는 인하로 보기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4월 16일) 이후 소비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경환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여당과 정부 측에서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발언들도 쏟아졌다.

최 경환 부총리는 7월 7일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경기 인식을 공유하고 재정·통화정책 간 적절한 정책조합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조가 필요하다"고 밝힌 데 이어 "경제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통화당국에서 이러한 인식에 맞게 대응할 것"(7월28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이라고 말하는 등 여러 차례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제기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과감한 재정정책뿐 아니라 금리인하 등 선제적 통화정책을 고려해야 할 시점"(7월25일 재보선 지원을 위해 방문한 충남 서산시에서 연 현장 최고위에서)이라며 한층 더 직접적인 압박을 가했다.

금융시장은 이미 한차례의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만 해도 연 2.8%대이던 국고채 3년물은 8월 8일 현재 2.5%로 떨어져 있다.

여기에는 이 총재가 지난달 10일 기준금리 동결 직후 "경기 하방리스크가 다소 크다"면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고, 21일에는 최경환 부총리와 만나 "경기 인식을 공유했다"며 기존 통화정책의 방향에 대한 견해를 거두는 모습을 보인 영향이 반영됐다.

한은은 새 경제팀이 41조원 규모의 거시정책 패키지를 발표한 날(7월 24일)에 맞춰 신용대출 수단인 금융중개지원대출(옛 총액한도대출)의 한도를 기존 12조원에서 15조원으로 3조원 증액하기로 했다.

최근 상황 전개가 김중수 총재 때와 같은 판박이가 될지는 오는 14일 최종 결론이 내려질 전망이다.

문제는 기준금리가 동결되든지, 인하되든지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에서 이 총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려도 욕먹고 동결해도 욕먹을 상황"이라는 게 최근 한국은행 직원들의 자조 섞인 반응이다.

그만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이 총재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