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웅 법무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동시에 사의를 표했다. 내면적 동기는 검찰의 수사과정에 대한 관리를 하지 못한데 대한 무력감 때문인지, 중간수사결과를 자신들에게 보고하지 않은 검찰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 요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이는 제도적 공권력기관인 검찰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되었고, 내부적 국정관리시스템이 허물어져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뿐만 아니라 박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시던 많은 이들이 고통과 슬픔의 도가니에 빠져있다. 최측근에서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던 김기춘전비서실장과 우병우전민정수석도 드디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으며, 왕수석이라 불리던 안종범 전정책조정수석은 이미 차가운 쇠고랑을 차고 있다. 모범적 행정관료로 평가받던 조원동 전 경제수석도 어쩔 수없이 직권남용죄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 흙탕물처럼 오염된 정치환경 속에서 고뇌하던 김영한 전민정수석은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이미 저 세상으로 갔다.
이제 그동안의 수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검찰은 29일 까지 박대통령이 대면조사에 응해달라는 요청서를 발송하였다. 아마도 검찰의 마지막 통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당에서는 대통령선거당시 박대통령캠프의 총책임을 맡았으며, 집권여당의 당대표를 지낸 적이 있는 김무성 의원이 대선후보의 꿈을 접는 대신 박대통령의 탄핵에 앞장설 것을 공표하였다. 밖에서는 국민들이 치켜든 분노의 촛불이 박대통령이 그만 권좌에서 내려오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 강도는 날이 갈수록 강하여지고 있다.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국민들의 78.4%가 이제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퇴진요구가 비등한 가운데 야당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였고, 통치체제 내부는 서서히 붕괴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점점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박대통령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국가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지혜로운 것일까?
선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버티기 작전으로 일관하면서 탄핵에 대응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자리를 유지하던, 권좌를 물러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승만, 닉슨, 다나까처럼 임기 중 사임을 하면서 새로운 정권의 창출에 협조하는 것이다. 두 길의 선택과정에 잊어서는 안 되는 고려요인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혼돈에 빠진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비탄에 빠진 국민들의 여망이다. 둘째는 4년 가까이 재직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명예와 권위이다. 셋째는 자신을 보좌하다가 고초를 당하거나 궁지에 몰려 있는 측근들의 운명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주말에는 또 한 차례 전국 방방곳곳에 분노의 촛불이 밝혀질 것이고 월말에는 근로자들의 대규모농성이 있을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위한 국가가 아니고 국민을 위한 국가이다. 두렵고 또 어렵기는 하겠지만 마지막 결단을 내려야 한다. 법무장관과 민정수석이 어려운 결단을 내렸듯이 박대통령도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결단이 무엇이냐에 따라 박대통령 개인의 미래는 물론 한국의 정치와 경제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