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내전 겪은 세르비아 "경제위기쯤이야">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전쟁 등을 겪으면서 서방의 금수조치로 10여년간 '굶주림'을 경험했던 세르비아인들이 현재의 전세계적 경제위기에는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AFP 통신이 8일 보도했다.

내전 당시 치러야했던 가혹한 고통에 익숙해진 시민들이 현재의 위기 쯤은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

1990년대 암시장으로 유명했던 베오그라드 부블랴크 재래시장의 상인 몸칠로 마이스톨로비치는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살아남을 것이다. 실업자가 늘어나는 등 변화가 오겠지만 밀로셰비치 시절 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르비아는 1990년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에서 잇따라 전쟁을 치렀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더 이상은 나쁠 수 없다'는 최악의 경험을 했다.

당시 일반 마켓과 상점의 선반은 텅비었고 시민들은 담배, 석유에서부터 식기와 화장실 휴지에 이르기까지 밀수품을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사야만 했다. 당연히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시 상점 점원으로 일했던 루지차 데스포토비치는 월급으로 받은 돈으로 아침에 10개, 저녁에 1개의 달걀 밖에는 살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내전이 가져다준 이런 경제적 참상은 흔히 1차 세계대전 이후 세르비아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었으며, 최근엔 짐바브웨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제는 세르비아인들이 이 같은 내전의 경험 때문에 현재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현재 세르비아 노동인구의 25%는 지하경제에 종사하면서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물가는 치솟고 정부 재정은 고갈되는 등 경제 상황은 갈수록 내전 당시를 닮아가는데도 시민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다.

일간 폴리티카의 경제 편집장인 미사 브르키치는 "크로아티아에서는 위기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밀가루나 석유를 사두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세르비아인들은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는 상황이 아무리 악화된다고 해도 1990년대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심리학자인 옐레나 불리치는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일반적으로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로인해 지나친 낙관주의로 흐르는 것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현재의 위기는 1990년대와는 다르다. 당시는 일가 친척 중 일부가 서유럽에서 돈을 벌어 본국으로 송금한 것이 위기 극복의 원동력이 됐지만 지금은 전세계적 경기침체로 선진 외국 상황도 좋지 않은데다, 해외에 나가 일하던 근로자들도 현지에서 일자리를 잃고 세르비아로 돌아오는 경우가 늘면서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관광 상품 박람회에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한 여행사의 에게해 호화 페키지 투어는 내놓자마자 70%가 팔려나가는 등 세르비아인들의 씀씀이는 경제위기와는 무관한 듯 커지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지적했다.

브르키치는 세르비아인들이 위기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고 믿는 것 같다면서 시민들의 이런 의식은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평가절하해온 정부 탓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