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연말,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늘 술 약속이 있다.
지하철은 초저녁에 끊겼고, 추운 새벽, 밖은 온통 택시 잡기 전쟁이다.
12월이 가는 것이 그리도 애달픈 것인지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술을 마시고 취하고 이야기 한다.
송년회·망년회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위와 장에 술을 들이붓고 다음날 쓰린 속을 달래며 다시는 술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한 번’이라는 조건으로 우리는 어김없이 술 약속에 나간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나 자신을 합리화 시키지만 술의 노예가 되어 어느 순간 내가 술을 먹는 것인지, 술이 나를 먹는 것인지 판단이 안 서게 된다.
한 해가 가면서 이루지 못한 계획과 약속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우리는 술로 달랜다.
유독 한국인들은 아쉬운 마음을 술로 달래는데 익숙하다. 또한 약간 쑥스럽고 민망한 마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전해야 하는데 용기가 없을 때, 그럴 때도 역시 우리들은 술의 힘을 빌린다.
술을 모든 상황의 특효약처럼 생각하는 우리들, 이제까지 술이 없는 망년회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연례행사처럼 언제까지 쓰린 속을 부여잡고 새해를 맞을 것인가. 즐겁게 마시고 즐겁게 취하는 그런 문화를 만들 수는 없을까?
오랜만에 서점에 나가니 '음주 사유'라는 에세이가 보인다. ‘음주 사유’ 책은 술 마심에 대해 두루 생각하고 그 까닭을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음주’를 진정한 내 것으로 만들어보자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가 왜 술을 마시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거나 마시니까 마셨던 것 같다.
'어린 왕자' 책에서 ‘어린 왕자’가 갔던 세 번째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자신이 술 마시는 것을 잊기 위해 또 술을 마시는 술꾼, 어린왕자는 그 술꾼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술 마시는 것이 부끄러우면 술을 그만 마시면 되는데 말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 어리석은 일을 우리도 12월이 되면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연초에 세운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고,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 싫어 술을 마시는 우리.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술에 끌려 다니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과 즐겁게 마시는 술은 달콤하다, 하지만 다른 목적 때문에 마시는 술은 내가 술에 대해 사유할 수 없게 만든다.
내가 술의 주체가 되어 마시고 술을 나의 소유로 만들지 않으면 내가 술의 소유가 되고 말 것이다. 즐거운 연말, 즐거운 술자리가 되기 위해서 이번 기회에 ‘나는 왜 술을 마시는가?’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사유의 답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술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