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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경제 악순환 빠져…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물가·실업률은 오르고

[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채무·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이 경제 성장률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반면 물가는 오르고 실업률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최악의 경제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채무를 갚기 위해 강력한 긴축 정책을 펴는 탓에 내수가 줄어 성장률이 더 떨어지고 있고, 성장이 둔화돼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이것이 세수 감소로 이어져 채무 변제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1일(현지시간) 유로존의 올해 성장 전망치를 지난 5월 발표한 2%에서 1.6%로 낮췄다. EU 집행위는 올봄 전망 때 1.6%로 이미 낮췄다.

문제는 내년 경기는 올해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는 것이다. OECD는 이번에 유로존의 내년 성장 전망치를 2%에서 1.3%로 대폭 낮췄다. EU는 춘계 전망 때 성장 전망치를 1.8%로 내놓은 이후 아직 추계 전망은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반기 이후 각종 경제 실적 지표들이 악화되고 있고, 향후의 동향을 보여주는 이른바 경기 선행지수들은 더욱 좋지 않아 이렇게 대폭 끌어내린 전망치조차 달성이 가능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경기동향 심리지표인 경기체감지수(ESI)는 9월까지 7개월 연속 하락하며 2009년 12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있다. 민간부문 경기 상황을 보여 주는 구매자관리지수(PMI) 역시 9월에 기준점인 50포인트 이하로 떨어지며 2년여 만의 최악을 기록했다. 이는 7월 이후 오히려 그리스발 유로존 채무ㆍ금융불안이 심화되고 국제 원자재 값이 급등한 악영향이 시차를 두고 계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영향은 4분기에 더욱 크게 나타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경기가 둔화되면서 실업률은 높아지고 있다. 유로스타트는 이날 유로존의 9월 실업률이 10.2%로 전달에 비해 0.1% 높아졌다고 밝혔다. EU 27개국 전체의 실업률 역시 9.7%로 전달 보다 0.1% 높아졌다. 유로존에만 9월에 실업자가 1천6백만 명, EU 전체로는 2천300만 명이 넘는다는 얘기다. 특히 부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22.6%), 그리스(17.6%), 라트비아(16.1%), 아일랜드(14.2%), 슬로바키아(13.5%) 등의 실업률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청년 실업이 문제다. 유로스타트는 9월 현재 유로존의 25세 이하 젊은이 중 329만 명, EU 전체로는 530만 명이 일자리가 없다고 밝혔다. 스페인의 경우 청년 실업률이 40%를 넘는다. 공공채무를 줄이기 위해 유로존 각국 정부가 유례 없는 긴축 조치를 취함에 따라 앞으로 실업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공공재정 지출만 대폭 감축된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도 주머니를 꽁꽁 닫아 경기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내수가 위축되면 수출로 활로를 찾을 수 밖에 없지만, 올해 상반기까지 유로존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 역시 급감하고 있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수출 지수가 크게 나빠졌다. 집행위는 지난 5월 유로존의 올해 경상수지가 -0.2%일 것으로 내다보았으나 미국 등 세계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더 둔화될 것으로 예상돼 적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OECD는 내년에 유로존 일부 국가는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면서 경기 회복을 위해 유로존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재정에 여유가 있는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유로존이 강력한 부양책을 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EU 정상들이 지난달 합의한 사항들을 신속하게 이행하는 것이 시장의 신뢰를 얻고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긴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물가안정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기회복을 위해 금리를 내리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물가는 9월에 이어 10월에도 유럽중앙은행(ECB)의 억제 목표치(2%)를 크게 웃도는 3%에 계속 머물고 있다. 이는 연말까지는 2.4-2.5%로 내려갈 것이라는 EU 집행위의 당초 예상과 다른 것이다. 민간 전문가들도 10월 인플레율이 2.8-2.9%로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으나 이 역시 빗나갔다.

채무·금융위기가 계속되면서 실물경제도 타격을 받아 경기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어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에는 EU 지도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회원국 정부들은 긴축재정에, ECB는 물가에 발목을 잡혀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유로존의 위기는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