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유럽 국가들의 재정·금융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날 유럽 국채시장에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은 물론 `AAA' 신용등급인 프랑스까지도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유로존에 대한 공포가 극대화됐다. 이들 국가는 급등한 국채금리로 인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재무부는 17일(현지시간) 2년물, 3년물, 5년물 등 총 69억8천만유로어치의 국채를 매각했는데, 5년물 발행금리는 2.82%로 지난달의 2.31%에 비해 0.5% 포인트 이상 크게 올랐다. 이날 국채 매각은 프랑스와 독일 국채의 금리 차이(스프레드)가 전날에 이어 사상 최고치(2.00포인트)를 경신한 직후 이뤄졌다.
프랑스와 독일이 모두 'AAA' 신용등급을 받고 있지만 프랑스 국채 가격이 독일 국채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어 프랑스는 사실상 'AAA' 등급의 위신을 잃어버렸다.
재정 위기에 대한 우려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스페인도 입찰매각을 통해 35억6000만 유로 규모로 발행한 10년물 국채의 금리가 7%(6.975%)에 육박했다. 이는 구제금융 마지노선까지 오른 것으로, 지난 4월의 5.433%에 비해 대폭 뛴 금리이며 14년 만에 최고치다. 유로존 출범 이후 사상 최고치는 연일 갱신하고 있다.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날도 7.05%로 `위험선'인 7%를 유지했다. 이탈리아는 내년 2~4월 매월 400억~600억유로의 대규모 국채 만기도래가 예정돼 있어 지금처럼 높은 금리가 지속된다면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신임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이탈리아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으며, 유로존이 붕괴할 경우 유럽연합(EU)의 존립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발언해 시장의 우려를 크게 증폭시켰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이탈리아가 이미 경기 침체에 빠졌을 수 있다면서 시장 접근에 실패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로존 재정 위기 전이 위험과 `정크본드(투기등급)'로 강등 위험에 직면한 동유럽 헝가리 정부도 이날 국채를 발행하면서 직전보다 높은 비용을 치렀다.
헝가리 재무부는 3년물, 6년물, 10년물 등 국채 총 460억포린트(약 2억달러)를 매각했다. 3년물과 10년물 발행금리가 각각 8.38%, 8.78%로 이달 초 발행 때에 비해 0.6~0.7%포인트 올랐다.
이처럼 유럽 국채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것은 지난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합의사항 이행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핵심국인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재정·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 유럽중앙은행(ECB)의 역할을 놓고 이견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프랑수아 바루앵 재무장관은 16일 밤 ECB의 역할에 대해 "ECB가 유럽 구제기금을 지원하는 것만이 채무 위기를 대처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밝혀 ECB 역할 확대에 부정적인 독일에 대한 불만을 간접 표현했다.
이에 앞서 프랑스 정부대변인인 발레리 페크레스 예산장관도 16일 오전 각료회의가 끝난 직후 ECB의 시장 개입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존 재정위기 확산 저지를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나는 그러한 접근방법이 지금 당장은 적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위기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ECB가 유로존의 취약점을 해결할 것으로 믿는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에 스스로 확신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와중에 유로존 내 우량국인 핀란드를 중심으로 유로존 분할론까지 불거지면서 유로존 내 불신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핀란드의 알렉산더 슈투브 유럽담당장관은 AAA 국가신용등급을 가진 유로존 6개국의 경제통합과 역할 강화를 제안한 것으로 한 언론에 보도됐다.
이밖에 EU조약 개정 문제도 유럽의 분열상을 드러내고 있다. 독일·프랑스는 유로존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영국과 핀란드, 네덜란드 등은 조약 개정만으로 현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면서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런던에 있는 미즈호 코포레이트 뱅크의 헤지펀드 판매책임자 네일 존스는 블룸버그에 "유로존에서 자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며 "당분간 투자자들이 만족할 만한 해법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경제·통화담당 대변인은 "스페인 뿐만 아니라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스프레드 확대는 의심의 여지 없이 불확실성을 반영한다"며 "이는 지난달 EU 정상회의에서 이뤄진 합의사항들을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