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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대기업, 정치권 '재벌 때리기'에 긴장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비판의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여야 정치권에서도 각종 재벌 개혁정책을 앞다퉈 발표하자 대기업들이 앞으로의 향방을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29일 '재벌세' 도입을 검토하고 10대 재벌의 출자총액제한 규제를 부활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재벌 개혁 청사진을 공개했다.

민주당은 이를 보편적 복지, 부자증세와 함께 4ㆍ11 총선의 3대 핵심공약으로 제시할 예정이며, 총선 이후 필요한 입법작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한나라당도 최근 `경제 민주화 실현'을 목표로 4ㆍ11 총선 공약 차원에서 대대적인 재벌개혁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나라당은 현 정부에서 이뤄진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하는 것을 비롯해 대대적인 '재벌개혁'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폐해 방지 ▲ 하도급 제도 전면 혁신 ▲ 프랜차이즈 모기업과 체인점간 불공정 근절 ▲덤핑입찰로 인한 중소기업 피해 방지 ▲연기금의 주주권 실질화 등의 정책 마련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재계는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대중 인기에 영합해 '포퓰리즘'에 가까운 정책을 들고 나와 선거에 이용하려고 한다며 불평을 쏟아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여야의 재벌 때리기 움직임에 대해 "경제 위기를 주도적으로 극복할 주체인 대기업을 때리는 정책이 이어져 우려스럽다"며 "정치권이 '재계 때리기'에 나서기 보다는 대기업이 투자를 많이 해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제 위기보다 더 걱정되는 것이 정책의 불확실성"이라며 "특히 민주당이 추진하려는 '재벌세'는 이중과세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현석 전무는 "선거를 앞두고 여당과 야당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기업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며 "투자와 고용을 살려야 하는 시점에서 이 같은 정책들은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경제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만큼 재계의 사기가 떨어지고 결국 복지 증진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며 "투자와 고용 창출에 치중할 시점인데 이런 식으로 기업들을 몰아붙이면 우리나라 경제에 '적신호'가 켜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이 도입하려는 '재벌세'와 관련, "조세라는 것은 소득이 있는 곳에 부과하는 것이지 재벌이라는 이유로 세금을 물리는 것은 조세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도 "막연히 재벌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으로 비난을 받고 공격을 받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상황이 정말 안타깝다"며 "이런 사회 분위기는 해외시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우리 기업의 의욕을 크게 저하해 결과적으로는 우리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기업들도 여론의 후폭풍을 우려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지만 여야의 정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 정치권이 내놓은 일감 몰아주기 근절 대책의 경우, 이로 인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검토중인 '일감 몰아주기 근절 대책'이 표면적으로는 대기업을 겨냥하고 있지만 실제 적용하게 되면 중소기업이 이 규제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