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 부진 등 극심한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가 적극적으로 창업활동에 나선 탓에 이례적으로 고용 증가폭이 컸지만 이같은 추세가 내년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L자형 장기 경기 침체와 구조조정 확산으로 올해 매월 40만명선을 상회했던 취업자 증가수가 내년에는 20만명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기부진에 따른 고용부진이 본격화되면서 '고용 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여 청년층이 구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청년 실업난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에 급격히 늘어난 베이비붐 세대 자영업자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폐업이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울러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수출이 한 자리 수 증가에 그치면 제조업 취업자 수도 정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금융투자업계와 통계청에 따르면, 취업자 증가 수는 2009년 마이너스(-)를 기록한 후 2010년 32만3000명, 2011년 41만5000명을 기록하며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고 올해도 40만명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43만명, 한국고용정보원 38만5000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몇년 간 경기 부진이 지속됐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비교적 높은 성장을 기록한 셈이다.
하지만 내년에는 사정이 크게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에도 3% 초반대 저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민간소비, 설비투자, 건설투자가 모두 감소하면서 내수 회복이 더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경제 성장률이 3%대 초반 내지는 2%대로 추락하면서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돼 L자형 장기침체에 빠질 경우, 한계에 몰리는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급증해 취업자 수도 급감할 것으로 분석했다.
LG경제연구원 강중구 책임연구원은 "고용유발 효과가 큰 건설경기의 부진이 이어지고 수출이 한자릿수 증가에 그치면서 제조업 취업자 수도 정체될 것"이라며 "내년 전체 취업자 증가 수는 28명에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강 책임연구원은 "그나마 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소폭 회복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20만명대 전망이 나오는 것"이라며 취업자수 급감폭이 더 커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고용조정이 미뤄져 왔는데 내년에는 어느 정도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며 "취업자 증가 수는 30만 명대 초반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이 4.8%였던 2005~2007년에 취업자 수가 연간 평균 28만9천명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내년 고용은 예상보다 더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로 낮춘 데 이어 내년 전망치는 3.2%로 내놨다.
LG경제연구원 강중구 책임연구원은 "내년에는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기업이 채용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며 "이들 기업은 신규 고용의 90%가량을 유발하지만 경기에 특히 민감하다"고 말했다.
대기업 채용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크루트 오규덕 대표 컨설턴트는 "대기업들은 경기가 안 좋았던 작년과 올해 연달아 채용을 줄이지 않았다"며 "경기 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지면 대기업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불확실한 경제 환경에 대비해 잔뜩 몸을 웅크린 상황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9월 상장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년에 설비투자 확대를 계획 중인 기업의 비율은 15%로 전년(29.6%)과 비교해 반 토막 났다.
특히 설비투자 증가세의 둔화 폭은 제조업(17.9%P)이 비제조업(8.2%P)보다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제조업 취업자 수도 정체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내년에 고용을 확대하겠다는 기업은 전체의 7.6%로 축소하겠다는 기업 9.4%보다 적었다.
이미 수익이 급감한 업종을 중심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있다.
세계 조선업계 1위 기업 현대중공업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인해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자 사무기술직을 상태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포스코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신용등급이 B등급으로 떨어지면서 계열사 구조조정에 나섰고, 순이익이 급감한 한국씨티은행도 희망퇴직을 추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고용 비중이 큰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전망도 밝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 남재량 노동정책분석실장은 "올해는 경제 사정이 고용에 제대로 반영이 안 됐다"며 "내년에는 고용의 9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고용이 확 줄어들고 자영업도 수익성 하락으로 폐업이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후대책이 부족한 베이비붐 세대가 재취업에 뛰어들지만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결국 영세 자영업 분야로 흘러들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내년 한 해 동안 23만명의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가 쏟아져 나와 자영업자가 급증하는 동시에 경기 침체와 경쟁 심화로 폐업 또한 속출할 것으로 진단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남재량 실장은 "50~60대 베이비붐 세대가 자영업에 진출하는 경향이 이어지겠지만 경기 부진에 따른 수익성 저하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이들은 숙박, 음식점, 도·소매업 등 저부가가치 업종에 몰리고 있어 어려움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경기 침체로 20대가 원하는 일자리 공급이 급감하면서 취업을 유보하는 젊은이들이 더 늘어나 청년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 분야의 일자리 전망이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무상보육 등의 정부 복지정책에 따라 보건 서비스 부문 취업자 수가 증가할 수 있다. 전문대학원, 평생교육 등 성인 교육시장을 중심으로 교육 서비스 취업자 수도 늘어날 전망이다.
또 내년에는 `대선 효과'로 공공 부문 고용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인크루트 오규덕 대표 컨설턴트는 "대선 이후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펼치면 공공서비스 중심으로 고용이 확대될 수 있다"며 "청년실업 정책이 나올 것으로 보이고, 국가주도형 사업이 포함된 업종에서도 고용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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