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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1급 장애인 박기범씨 한국은행 공채 합격 '화제'

[재경일보 김시내 기자] 최고도의 안경을 쓰고도 시력검사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력이 약해 시험문제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고 뇌병변으로 인해 하반신까지 자유롭지 못한 `중증종합1급' 장애인이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이는 한국은행 공채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화제가 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08학번인 박기범(23·남)씨가 주인공으로, 세계 경제위기 예방에 젊음을 불태우고 싶다는 열혈남아다.

한국은행이 지난 2011년 2급 장애인을 채용한 적이 있지만 1급 중증 장애인을 뽑은 것은 박씨가 처음이어서 기적과 같다는 평가다.

박씨는 시험 당일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안경을 쓴 채 돋보기까지 들고 왔다. 돋보기로 보아야 문제가 겨우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처럼 문제를 읽기는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박씨는 평소 암기력과 암산력, 통찰력을 길러왔다. 문제를 더 빨리 풀기 위해서다.

그는 장애가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라면서 점차 무덤덤해졌다고 했다.

박씨의 또 다른 무기는 집중력. 그는 "몸의 불편함을 극복하려고 의도해서 집중력을 길렀다"며 "전남 화순 능주고등학교에서 처음에는 전교 180명 가운데 160등이었지만 집중해서 공부하다 보니 졸업 때는 전교 5등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올해 취업준비 때도 다른 기관이나 회사는 아예 지원하지 않고 한국은행 단 한 곳에만 집중했다.

박씨는 시각 장애를 안고 있는 가운데 고교 시절 뇌출혈로 인해 뇌병변이 발병, 하반신까지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그럼에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끝에 한국은행에 공채됐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지난주에 부모님의 생신이 걸쳐 박씨의 기쁨은 배가 됐다. 아버지는 20일, 어머니는 22일이다.

"합격 통보를 받은 날이 22일이었으니 정확히는 어머니 생일선물이지만, 아버지에게도 선물과 같았을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박씨는 "한은에서 일을 시작하면 성장기에 겪었던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세계적 경제 위기를 예측해 대응하는 일에 젊음을 불태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올해 첫 1급 중증장애인을 선발한 한은은 박씨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부서에 배치할 계획이다.

또 조만간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6급 직무직 15명을 선발하는 등 장애인 문호를 더욱 넓힐 예정이다.

지금까지 경제·경영·법·통계·컴퓨터 등 5대 전공에 한정해 신입직원을 채용했던 한은은 올해 처음으로 `자유전공' 분야를 신설해 3명을 뽑았다. 이들의 전공은 수학·노문·중문학이다. 이는 평소 문사철(文史哲)을 강조해온 김중수 총재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