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 보호는 원래 안중에도 없었다. 지난 21일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태스크 포스가 내놓은 개편안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금융회사 제재권을 갖는 대신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를 내부에 두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금소처를 기존 금감원에서 분리해 독립기구로 신설하는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기관들 모두 입들이 서너 댓발씩 나와 있다. 금융위는 금소처를 손아귀에 못 넣어 아웅거리고 금감원은 금융회사 제재권을 금융위에 넘겨서 그렇다. 금감원 노조는 제재권을 훔쳐갔다고 강도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어찌됐든 난데없이 금융소비자 보호와는 상관없는 금융회사 제재권이 불쑥 튀어나와 금융위와 금감원의 진흙탕 싸움이 국회 입법 과정에서 볼썽사납게 한판 벌어질 것 같다. 금융회사들도 죽을 맛이다. 당장 금융위와 금감원외에 금소처까지 3기관을 상전으로 모셔야 되니 말이다.
2010년에 은행의 제재권을 금융위로 이관하는 개정안 처리를 놓고 영역 다툼을 벌였다가 지금처럼 제재권을 금감원에 두는 것으로 결론 냈었다.
금융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현행 금융감독시스템을 금융정책 수립 기능(액셀러레이터, 공격수)과 금융감독 기능(브레이크, 수비수)을 함께 가진 ‘괴물’에 비유한다. 때로는 공격수와 수비수 구분 없이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동네축구’에 비유하기도 한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은 시장의 자율성을 두고 벌이는 ‘완화와 규제’라는 시소게임(seesaw game)을 벌이는 양자여야 한다.
규제 감독의 완화로 가다가 과열 양상 국면에 접어들면 어느 순간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데, 금융위원회에서 괴물처럼 전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자유 시장 경제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다.
IMF 환란(換亂)과 170조원에 이르는 국민 혈세가 투입된 금융권 구조조정, 카드 대란, 외환은행 불법 매각과 재매각 사건, 저축은행 사태 모두 동네축구를 하다가 어이없는 자살골을 빚은 대형 금융 참사다. 금융정책 기능과 금융감독 기능을 모두 가진 괴물이 저지른 비극이다.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의 저자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프로젝트 신디케이드 기고를 통해, 규제 수단은 결코 금융 산업의 복잡성을 따라갈 순 없다며 오히려 단순 명확한 시스템으로 복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한다.
금융 규제는 시장에서 단순하고 명확할 때 비로소 효과가 크다. 규제를 어겼을 땐 예외 없이 강력한 처벌을 해야함은 물론이다. 금융회사의 부채조달 의존도를 과감히 줄이고, 이익 유보나 증자 등을 통해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도록 하는 것이 가장 단순한 규제 방법이다. 규제나 원칙은 단순해야 효과도 높다.
그러나 완벽한 금융감독체계 개편만으로 금융개혁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제도 개편과 함께 사람도 바꿔야 된다고 생각한다. 부패한 금융당국 관료들이 바뀌지 않는데 아무리 좋은 법제도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과거 대형 금융 참사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부패한 금융 모피아 관료들이 있는 한 금융개혁은 공염불이다.
어쩌면 완벽한 금융감독체계를 만드는 것은 금융가의 탐욕과 부정직, 그리고 금융당국의 무능으로 불가능하며 공허한 일인지 모른다. 한마디로 정책과 시장의 실패 모두 부패한 금융감독 당국자와 금융가들의 맨붕에서 비롯된 것이 더 크다고 본다.
시급히 고쳐야될 것은 제도 이전에 사람을 바꿔야 된다. 사람이 문제다. 끼리끼리 해먹고 밀고 댕겨주는 회전문 인사와 낙하산 인사가 판치는 관치 금융하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는 처음부터 먼나라 이야기였다.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원으로 격상시키고 대통령 직속으로 하는 특단의 대책이 강구되지 않는 한 금융소비자 보호는 100%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일련의 대형 금융참사들이 알려주는 교훈이다.
관존민비(官尊民卑)에 기반한 어떠한 금융감독 당국의 개편안도 “이번엔 다르다”가 아니라 “이번에도 똑같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민존관비(民尊官卑)에서 출발한 금융감독체계만이 진정성이 담보되고 비로서 금융소비자가 만족해 지는 것이다.
관료주의 척결과 함께한 금융감독체계 개편만이 박근혜 정부식 창조금융이며 그것이야말로 금융소비자와 국민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