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릴러물보다 더 리얼한 탈세 공화국
지난해 7월 조세정의네크워크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역외탈세규모는 7,790억달러(890조원)로 중국 1조1,890억달러, 러시아 7,980억달러에 이어 세계 3위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40년간 매년 22조원 이상 해외로 빼돌린 나라에 너무 어울리는 영화다.
탈세와 지하경제 양성화, 조세피난처 이용 불법 비자금 조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차명 거래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동시에 엄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 뿐이다(본 칼럼에선 동창회 및 종중 재산 관리를 위한 차명거래는 극소수로 제외한다). 현금뿐만 아니라 주식, 채권까지 포함해서 실제 소유주와 명의를 타인에게 빌려준 사람 모두 처벌하고 증여세까지 부과한다면 불법 행위는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오는 12일이면 금융실명제가 시행된지 20년이다. 금융실명제는 그간 지하경제 양성화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차명거래를 용인하고 있어 오히려 탈세를 부추켰다. 이런 연유로 현재 국회차원에서 차명거래 금지에 대한 여러 논의가 활발하다.
세금과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처럼 세정당국과 탈세범들간의 쫒고 쫒기는 총성없는 전쟁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제탈세전문가들의 체계적인 자문을 받으며 파생금융상품까지 이용해 국경을 넘나드는 탈루 기법들은 더욱 정교하게 자기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현행 우리나라 금융실명제법으론 쫒을 수도 없고 전문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게걸음 행정이다.
◆ 탈세와의 전쟁은 국세청 개혁이 관건이다
어찌됐든 차명거래 금지와 처벌을 강화하는 금융실명제법을 보완만하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는 탈세범들을 근절시킬 수 있을까. 단언컨대 절대 불가다. 아무리 좋은 법도 이를 집행하는 세정당국과 검찰의 성역없는 수사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처럼 3억6천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고 천배에 해당하는 3,600억원의 세금을 탕감해주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침묵하는 국세청 임직원들의 부패 관료주의가 상존하는 한 세정당국의 성역없는 탈세와의 전쟁은 빛좋은 개살구요 공염불 구호다. 거듭밝히지만 검찰은 국세청내에 전 청장과 공모한 세력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해야 한다(물론 국세청 단독으로 세금 탕감은 불가능하고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재벌 총수 일가들의 세금없는 대물림을 목격하고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2004년부터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허창수 GS 회장, 이재현 CJ 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일가 등 9개 재벌 총수 일가들이 일감몰아주기 등으로 편법 증여를 했음에도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2004년부터 서로 핑퐁만 치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지난 4월 일감몰아주기와 일감떼어주기를 밥먹듯이 한 재벌 총수 일가들에게 증여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등 22건의 감사결과를 기재부와 국세청에 통보했다. 하지만 김덕중 국세청장은 증여세 소급 적용 운운하면서 과세불가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행정부작위의 위법성이 도를 넘고 있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2004년부터 재벌의 편법적인 부의 이전을 방지하기 위해 증여세 완전 포괄주의가 시행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상기 두가지 사례는 법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세계 3위의 역외탈세 국가에서 지난 47년간 국세청장 18명 중 8명이 검찰조사를 받거나 감옥가는 국세청으론 더 이상 탈세와의 전쟁을 믿는 국민은 없다.
부패한 국세청의 대대적인 개혁과 함께 차명거래 처벌을 대폭 강화시킨 금융실명제법 보완만이 치욕적인 탈세 공화국의 멍애를 벗어날 수 있다.
국세청의 개혁이 제도개선이나 탈세와의 전쟁보다 앞서야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