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세법 개정안의 허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법인세 비과세·감면 부분을 과감하게 정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데 이어, 한국납세자연합회와 하나은행은 교육비와 의료비 지출 비중이 높은 층이 가장 많은 세금 부담을 떠안을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대기업·고소득층은 그대로 두고 근로자들에게 세수 부족의 책임을 떠넘긴 세법 개정의 문제점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이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지속돼 온 비과세·감면 제도가 89개에 달하며 이를 통해 감면받은 세금이 매년 21조715억원에 달한다. 특히 전체 비과세·감면 제도 218개 중 일몰조항조차 없는 항목이 71개로 연평균 18조2213억원의 세금이 허공에 날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 이행에 필요하다고 밝힌 재원이 5년간 48조원, 매년 9조6000억원인 것과 비교해 보면 근로자들을 타깃으로 삼은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에만 초점을 맞추고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에는 눈감으면서 조세 형평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다.
한국납세자연합회와 하나은행의 분석을 살펴보면 세법 개정안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지도 확인된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교육비와 의료비 등 필수 비용에 대한 미세 조정이 전혀 없었던 탓에 교육비와 의료비, 연금 등의 지출이 많은 연봉 7000~8000만원대 납세자의 세금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 것이다.
분석에 따르면 같은 연봉 7500만원이라도 교육비, 의료비, 개인연금, 보험료를 부담하는 4인 가족이 보험료만 부담하는 2인 가족보다 580만원의 세금이 늘어나는 비현실적 상황이 발생한다. 자녀 수와 의료비 부담 등 현실적 가계 비용에 대한 고려를 세액공제 비율에 전혀 반영하지 않은 탁상공론 탓에 정부 정책에 따라 다자녀와 부모를 부양하는 가구가 증세의 주요 타깃이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각계에서 제기되는 비판을 겸허히 검토해 세법 개정안을 과감히 손질해야 한다.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필연적인 증세를 피해서 꼼수를 찾다 보니 자꾸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과세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아온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 비과세·감면 혜택 정비만으로도 공약이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재원 마련을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인 근로자 증세를 택하기 전에,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을 만큼 비과세·감면 제도로 누더기가 된 한국의 세법이 올바르게 개혁되도록 정공법을 택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