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민중총궐기대회에 십만의 사람들이 모였다. 할 말이 있어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러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현장에 들어줄 사람은 없고, 막아선 차벽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경밖에 없다. 공허한 외침을 몇차례 되뇌인 뒤에 할 행동은 무질서와 폭력밖에 없다. 무장하고 막아선 경찰은 군중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소리도 지르고 주먹도 휘둘러볼 환경을 조성해준다. 투쟁이 슬픔이 된 세상이다.
야만을 낭만처럼 부추기는 사회파괴세력
광우병이후 최대 군중이 모인 이유는 답답한 현실때문이다. 이렇게라고 하지 않으면 안될 것같은 절박한 심정으로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여서 외칠때 무슨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모여서 집회하고 시위하고 항쟁해야 하는 때는 사회가 법과 제도와 절차를 무시하는 무법천지의 독재권력세상일때다. 현 대통령은 선거제도로 선출된 절차상 하자가 없는 대통령이다. 독재자의 딸이지만, 본인이 현재 독재를 하고 있지는 않다. 현재 하는 정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고 불통 대응에 화가 나서 독재자나 다름없고 쿠데타나 다름없는 폭거를 한다고 생각이 드는 이도 있겠지만 과잉된 감정과 표현일 뿐이고 사실은 아니다.
법을 무시하는 정부라면 시민혁명이 필요하겠지만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법과 질서와 제도를 지키고 사회안정을 유지하는 세력에게 정당성이 있다. 도덕성도 상실하고 소통도 잘 못하고 막무가내인듯한 새누리당이 매번 선거에서 이기는 이유는 현재 민중의 삶에 새누리당이 더 도움이 된다고 투표자들이 생각하기때문이다. 대통령이 마음에 안들면 선거로 교체하면 되고, 지금 당장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같으면 탄핵을 하면 된다. 노동개혁도 농민의 삶도 경제체제도 법과 제도와 절차에 따라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다. 모여서 떠든다고 교과서 국정화가 철회되지도 않고 경제정책이 변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대화하고 타협하고 법을 바꾸고 제도를 만들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폭력을 동원한 군중 집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혼란과 교통체증뿐이다. 대규모 민중집회에 모여든 대다수는 현재를 고민하고 대안을 요구하고자 하는 보통의 상식적 군중일 것이지만, 그 모임의 최종결론은 사회불안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있냐고, 종북 세력이 어디 있냐고, 나는 내 의지로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집회의 상황과 결론은 철저하게 반사회적이고 소모적인 반국가상황만 초래한다. 한반도의 절반을 차지하고 2천 5백만명의 북한 국민을 속이고 60년의 철권통치를 하는 괴뢰집단은 대한민국의 혼란을 야기시키는 집회와 시위와 무관하지 않다. 99퍼센트의 사람은 사회에 대한 뜨거운 정의감으로 나온 일반 군중이겠지만, 기획과 선전에 급진 좌경 세력의 입김과 목적은 아주 유효적절하게 투입되었다.
몰려든 민중들과 막아선 의경들, 그리고 투쟁심을 고취시키는 음악과 발언들, 그리고 몰려든 군중앞에 겁과 흥분으로 가득한 경찰의 대응은 무질서, 그 자체다. 경찰의 과잉대응을 트집잡지만, 수십년의 집회시위 경험을 통해 흥분된 군중과 경찰의 부딪힘의 결과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회 파괴 세력의 작품이다. 시위대의 구호와 입장과 주장을 이해하고 동조하는 사람이라도 시위의 결과를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무질서와 누군가의 신체파괴, 사회의 갈등외에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회파괴세력의 목적인 사회불안 야기라는 기획의도에 백퍼센트 부합하는 것이다.
좀비같은 급진 좌경세력에게 혼을 불어넣어준 국정화 논의
십만군중이 모이게한 분노에 점화를 시켜준 것은 교과서 국정화 논의중의 실언이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90퍼센트가 좌경화되었고 혼이 비정상이라는 대통령의 발표는 말 자체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논란을 일으킨다. 역사가와 사상가가 박근혜 대통령과 역사와 혼에 대해서 논쟁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박대통령에게 '그것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권력자가 역사를 손대려는 시도는 단 한번도 어떤 굽힘도 주저함도 타협함도 없이 이루어졌다. 조선의 거의 모든 왕이 자신의 아버지와 조상을 높이려는 시도를 벌이고 그 누구나 죽기전에 반드시 이루어냈다. 태조, 세종, 선조, 영조, 인조, 정조등 그 누구나 아버지를 높였다. 당시의 집권세력도 권력의 정당성을 높이는 일이기때문에 마지막에는 다 동의한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고시하고 강행하고 있다. 이제 국사편찬위원회는 추숭도감(追崇都監)이 되는 일만 남았다. 거기에는 그 어떤 논리가 필요하지 않다. 새누리당도 결국 국정화에 찬동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집권세력의 정당성을 높이는 일이기때문이다. 결국 권력의지로 쓰는 역사에 무슨 논리가 있겠는가? 노무현을 죽음까지 밀어붙여본 현 여당세력은 권력을 놓는 순간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무리한 논리를 굳이 언급했다. 여당 대표는 역사학계 90%가 좌경화되어 있다고 말하고 박 대통령은 혼이 비정상이라는 혼이 나간듯한 발언을 했다. 본인들 원하는대로 자신의 역사를 쓰면 어찌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역사학계 전부를 적으로 만드는 발언은 급진 좌경세력에게 새생명을 불어넣는 힘을 주었다. 역사와 혼에 대해 한바탕 논쟁을 벌이자고 나선다면 비전문가인 박대통령측과 타고나고 훈련된 논쟁가들 중에 누구에게 더 유리할 지는 뻔한 일이다.
대화와 논리에 약한 정부는 생명을 잃어가던 급진좌경세력에게 군중을 모을 힘과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11월 14일에 모인 숫자는 광우병 사태이후 최대인 10만명이다. 만약 이 숫자가 응집된 힘과 훈련을 거친 군사라면 나라라도 엎을 수 있는 엄청난 숫자다. 할 일 많은 사람들이 놀 일 많은 주말에 모여들만큼 분노케한 이 정부의 막대응이 불러온 혼란이다.
이념을 가장한 이익집단의 충돌앞에 국민과 국익이 훼손된다.
여당도 야당도 좌경세력도 민생과 경제를 부르짖으며 정당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두 민생사기단이다. 민중을 휘둘러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각자이익집단이다. 권력을 획득하고자하고 경제적 잇속을 노리면서 보수와 진보를 논하고 역사와 혼을 이야기하며 민생과 경제로 사기를 친다. 그 극렬한 대립의 현장에 10만명이 동원된 것이다. 이익집단의 가장된 이익추구속에 동원된 민중들은 폭력집회의 일원이 되어 소리도 질러보고 몽둥이도 휘둘러보고 가슴에 뭔지 모를 뜨거움도 느껴본다. 젊디젊은 의경은 몰려든 군중을 향해 어찌해야 할바 몰라하다 흥분과 분노와 공포에 휩싸여 물대포를 쏘아댄다. 사회는 불안해지고 경제는 발목을 잡히고 국민은 힘이 빠진다.
과거의 투쟁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다.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는 골리앗같은 권력앞에 용감하게 덤벼드는 다윗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시위는 낭만적 자아도취에 빠진 야만외에 그 아무것도 아니다. 대화와 타협, 절차와 제도가 통하는 시대에 고함을 치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자에게 정당성은 없다.
투쟁이 슬픔이 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