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달 30일 SK그룹 확대경영회의에서 경영진들에게 매우 강한 주문을 던졌다. 3대 부문에 대한 혁신을 강조했다. 사업모델 혁신과 기업문화 혁신, 자산 효율화 등에 대한 부분이었다.
SK그룹 확대경영회의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산하 7개 위원장, 장동현 SK텔레콤 사장,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 등 16개 주력 관계사 CEO 및 관련 임원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최 회장의 이같은 발언이 나오게 된데에는 그룹 경영지표에 일제히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계열사의 기업가치가 하락하고 이익이 둔화하는 추세다. 문제는 이런 경영여건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렸다. 인수·합병이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공정위는 사업자 경쟁제한을 이유로 두 회사가 합병해서는 안되며, 주식매매를 체결해서도 안된다고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의 결정은 두 회사의 결합으로 방송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자가 생기는 것에 대한 우려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인수합병 불허 방침을 정하면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SK텔레콤은 "시장경제에 반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반응하며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출·내수 동반부진에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신보호무역주의 확산, 중국의 급부상 등으로 국내외 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전쟁', '죽음' 등 격한 표현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그것을 그대로 전한 것이었다. 그는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슬로(slow)가 아니라 서든데스(sudden death, 급작스런 죽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망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며 계열사 경영진에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이같은 강도는 지난 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연상시킨다.
절박성이 느껴진다. 그의 우려와 같이 SK그룹은 지금 변하지 않으면 도태는 시간문제다.
최 회장은 지난 해 광복절 특별사면·복권을 받고 경영에 복귀했다. 그는 2년 전 횡령 혐의가 확정되면서 SK그룹 모든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내려놨었다. 최 회장의 부재 속에서 SK그룹은 어려운 경영 여건에 직면해 있었다.
그룹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던 에너지·화학은 저유가 상황에 부딪혀 활기를 잃었다. SK텔레콤은 18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하기도 했다. 오너의 부재로 경영상 공격적 의사결정도 어려웠다.
당시 그의 복귀를 두고 그것이 이런 회사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이들이 있기도 했다. 금감원 조사 등 개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복귀했다. 조직 구성원과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컸다. 그러나 현재는 어떤가. 그의 복귀가 SK그룹의 기업가치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결과로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다.
확대경영회의에서 최 회장은 "현실의 SK그룹은 ROE(자기자본이익율)가 낮고 대부분의 관계사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각종 경영지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변화 없으면 죽는다"고 말하며 하반기 강력한 변화를 주문했다. SK그룹이 저성장 구조에서 변화하려면 그의 말대로 '환골탈태'가 시급해보인다. 그렇지 않는다면 최 회장의 언급과 같이 안정과 성장은 이룰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