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현 정부와 박 대통령은 국정을 이끌고 갈 동력을 상실하였다. 어떠한 형태로 혼란이 수습되고 통치체제가 재정비된다 하더라도 앞장서서 주요정책을 결정하고 효율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에너지를 상실해 버린 것이다. 결국 국정주도는 국회가 맡게 될 것이고 오히려 그런 정치시스템이 바람직하다. 대통령중심제 국가라 하더라도 국회야말로 정책결정과 민의대변의 중요한 한 축이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건이 터지기 하루 전 박 대통령은 개헌이라는 중차대한 정책의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개헌문제는 국정농단사건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완전히 잊힌 정책이슈가 되고 말았다. 박대통령이 개헌이라는 이슈를 들고나온 직후만 하더라도 시기 문제의 정절성이 정부주도의 부당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지만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 국정농단사건에 휘말리면서 개헌이라는 정책의제 자체가 더 급박한 정치적 사건에 함몰되고 만 것이다.
반면에 바로 지금이 개헌을 논의할 적기가 될 수도 있다. 이번의 국정농단사건은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대통령 리더십상의 문제점, 즉 자질과 능력의 결여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5년 단임 대통령제라고 하는 헌법상 통치구조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개 사인에 의한 국정농단과 통치 엘리트들의 공권력 남용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급선무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다. 검찰에게 막중한 사명이 부여되었고, 국회와 국민 또한 이런 문제 해결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심과 협력을 해야한다. 사정당국의 수사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의 소재를 밝혀내는데 한계가 있다면 국회는 당연히 국정조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와중에서도 개헌문제를 국회에서 동시에 다룰 수는 없을까?
물론 더 중요한 과제인 책임자 규명과 처벌, 그리고 새 정부구성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법적 사건처리는 사법기관에 맡기고, 국회는 새 정부 구성과 신헌법 마련에 필요한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국회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여야가 논의하면서 필요하면 국정조사와 새정부 구성에 대한 관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국회가 조금 바빠지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앞으로 1년은 국회중심의 정부운영이 될 수밖에 없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국회와 국민의 여망이었던 개헌문제를 차제에 처리하는 것이 향후 국정의 순조로운 흐름을 위하여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