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 2분기(4∼6월) 전기·가스요금 인상 여부 결정을 앞두고 고심에 빠졌다.
지난달 31일 정부·여당이 인상을 잠정 보류하기로 한 이후 보름이 넘었지만, 인상과 동결 중 그 어느 쪽으로도 결정하지 못한 채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섣불리 단행하고 싶지 않은 여권의 속내와 공기업의 적자 해소를 위해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산업계의 주장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여권 내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오는 24일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고려하면, 결국 인상 여부는 윤 대통령의 방미 후 결정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여당은 우선 오는 20일 민·당·정협의회를 통해 업계의 의견을 두루 수렴해 최종 인상 여부에 참고하겠다는 방침이다.
여당인 국민의힘 내에선 전기·가스요금의 즉각적인 인상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배경엔 1년도 채 남지 않은 내년 총선이 있다.
이번에 인상 단행 시 올여름 냉방비에 이어 겨울철 난방비까지 '폭등' 현상을 초래할 수 있고, 이 경우 선거를 앞둔 국민들로선 여당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것이란 점에서다.
국민의힘은 요금 인상에 앞서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에 자구책 마련부터 촉구했다.
이에 해당 공사들이 향후 5년에 걸쳐 자산을 매각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재정건전 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이 또한 충분치 않다는 게 국민의힘 측 설명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1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한전과 산업부가 해야 할 일들을 여전히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문재인 정권 5년간 요금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큰소리쳐 왔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한전의 부채를 단시간에 다 갚아야 한다는 논리인가. 요금 인상이 자칫 총선을 망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당 일각에선 총선 전까지는 전기·가스요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족한 자금 조달은 회사채 발행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논리다. 국회는 지난해 말 이들 공사의 회사채 발행 규모를 확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다만, 한전·가스공사의 회사채 발행 규모를 늘리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우수한 한전·가스공사로 채권시장의 수요가 쏠리면서 시장 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산업부는 인상 요인에 당정이 공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상 여부를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보류 상태를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인상 요인에도 불구하고 (인상 여부) 결정이 지연되면 '풍선효과'가 일어나 나중에 더 부담스러운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자구 노력에 대해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자구 노력을 추가로 발굴할 것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전과 가스공사 등 산업계에선 요금 인상에 공사의 '사활'이 달렸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전에 따르면 올해도 한전의 적자가 5조원 이상 발생할 경우 내년에는 한전법에 규정된 사채발행 한도 초과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전력구매대금과 기자재·공사대금 지급이 어려워져 전력산업 생태계 전반이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가스공사는 요금 인상 불발 시 작년 말까지 누적된 8조6천억원의 원료비 미수금이 올해 말 12조9천억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