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오진희 기자] 이발소, 미장원, 세탁소, 목욕탕, 여관(모텔) 등 `골목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자영업자들 가운데 상당 수가 연간 매출이 2천만원도 채 안돼 임대료와 세금, 종업원 월급, 운영비 등을 감안하면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게 문은 열고 있지만 오히려 돈을 까먹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올해 들어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면서 이들 자영업자의 매출도 대폭 줄어든 것으로 조사돼 그렇지 않아도 힘든 상황에 처한 자영업의 몰락과 파산이 예상되고 있다.
자영업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경쟁이 격화되는 데다 건물 임대료와 인건비는 계속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연 매출이 2천만원도 채 안되는 영세한 운영으로, 자영업자들 스스로 "대책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이 매달 갚아야 할 대출이자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 외에 파산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가 새로운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공중위생수준제고를 위한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방안연구'에 따르면, 서울 등 10개 도시의 1760개 숙박·목욕·이용·미용·피부미용·세탁업소를 면접조사한 결과, 이용업의 88.7%, 세탁업의 62.3%가 연매출이 2천만원 미만이라고 답했으며 연매출이 4천만원을 넘는 업소는 거의 없었다.
또 미용업 48.4%, 피부미용업의 38.1%도 연매출이 2천원만원이 되지 않았다. 숙박업과 목욕업은 29.2%, 17.1%로 그마나 상황이 나았다.
이들 업종의 평균 월세는 ▲미용업 129만원 ▲피부미용업 129만원 ▲세탁업 54만원 ▲이용업 37만원 ▲숙박업 603만원 ▲목욕업 814만원 등으로 집계돼 미용업, 피부미용업, 세탁업, 이용업 관련 상당수 업소는 수입으로 생계 유지는 커녕 월세 내기도 벅찬 것으로 나타났다. 연매출 2천만원은 월매출로 167만원이 채 안되는 것이다.
가게 건물을 월세로 임대하고 있는 비율은 피부미용업이 83.3%로 가장 높았고 미용업(71.0%), 이용업(62.0%), 세탁업(58.2%) 역시 절반 이상이 매달 임대료를 내고 있었다.
여기에다 종업원 월급, 세금과 공과금 등을 감안하면 이들 업종 외에 그나마 사정이 나은 숙박업이나 목욕업 등도 상당 수가 적자 상태인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운영 상태에 대해 `어렵다', `매우 어렵다"고 답한 비율이 목욕업 93%, 이용업 92%, 숙박업 83%, 미용업 76%, 피부미용업의 72%, 세탁업 69% 등으로 나타나, 거의 모든 업종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매출액을 지난해와 비하면 숙박업의 93.1%, 목욕업의 90.2%, 이용업의 90.6%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용업의 78.3%, 세탁업의 77.2%, 피부미용업의 68.4%도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비 평균 매출 감소율은 피부미용업이 36.2%로 가장 높았고 이어 미용업(25.8%), 목욕업(24.1%), 숙박업(23.5%), 세탁업(21..6%), 이용업(20.9%) 등이 뒤를 이었다.
향후 전망도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응답이 업종에 따라 57.1~90.4%에 달했다. 목욕업(90.4%)이 가장 비관적이었고, 이용업(87.3%), 숙박업(75.6%), 세탁업(72.0%), 미용업(64.6%) 등도 우울한 전망이 50%를 훌쩍 넘었다.
하지만 향후 대책이 아예 없다고 답한 곳이 절반이나 됐다. 이용업(53.9%), 목욕업(50.8%), 숙박업(49.0%), 세탁업(40.6%)의 절반 안팎이 "대책이 없다"고 했다.
업종별로 8~21%는 향후 상황이 더 나빠지면 "가게 문을 닫겠다"며 폐업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탁업(21.2%), 이용업(20.0%), 목욕업(17.5%)에서 폐업을 염두에 둔 업주가 많았다.
업주들은 경영상 애로사항(중복응답)으로 ▲과다한 동일 업종 창업 ▲시설·서비스의 개·보수 부담 ▲인건비 상승 ▲원재료 가격 인상 ▲점포 임차료 인상 ▲정부의 비현실적 규제·단속 등을 꼽았다.
어려운 경영 상황 때문에 자영업자들의 절반 이상은 빚을 지고 있었다. 부채가 있는 업소의 비율은 목욕업이 79.5%로 가장 높았고 숙박업(73.2%), 피부미용업(64.6%), 미용업(59.5%), 세탁업(51.9%), 이용업(49.8%)도 대부분 50%를 웃돌았다.
부채 규모는 업종별로 ▲숙박업 8억9600만원 ▲목욕업 8억6600만원 ▲미용업 7200만원 ▲피부미용업 6300만원 ▲이용업 3900만원 ▲세탁업 3700만원이었다.
또 영업주의 연령은 숙박업, 목욕업, 이용업의 경우 50대가 주류였다. 이들 3개 업종에서는 영업주 나이가 60대를 넘는 경우도 37.7~42.4%에 달했다. 반면 미용업과 피부미용업은 상대적으로 젊은 40대 영업주의 비중이 가장 컸다.
영업주가 현재 업종에 종사한 평균 기간은 업종별로 ▲이용업 30.3년 ▲미용업 21.3년 ▲세탁업 18.6년 ▲목욕업 11.2년 ▲피부미용업 10.6년 ▲숙박업 9.8년 등이었다.
정진욱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중위생업종에 연 매출이 2천만원도 안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고 작년보다 경영상황이 더 나빠진만큼 중소기업청 내에 공중위생업종 전담기구를 둬 지원해야한다"고 밝혔다. 정부 지원과 환경 및 시설 개선을 주도할 체계부터 갖추자는 얘기다.
아울러 그는 '공중위생업종 영업 활성화 및 진흥법' 제정도 제안했다. 영업 진흥과 경영 지도, 소비자 분쟁처리제도 정비, 위생시설 개선 등을 통해 소비자와 이용자의 이익을 모두 보호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한다는 설명이다.
건강증진기금과 비슷한 형태로, 공중위생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중위생진흥기금(가칭) 조성도 대책의 하나로 거론됐다.
위반 과징금, 정부 또는 위생서비스단체 등의 보조금, 출연금. 기부금 등으로 돈을 모아 위생 개선을 위한 시설 융자, 공중위생 영업 활성을 위한 정책 지원, 영업자단체 사업 지원, 홍보 사업 등에 쓰자는 구상이다.
또 공중위생분야 영업주와 종사자가 활로를 찾을 수 있도록 노동고용부의 취업 프로그램, 중소기업청 시설 개·보수 자금, 창업 컨설팅 등 각 부처의 관련 지원 사업 정보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공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위원은 "공중위생업 분야는 국민 삶의 질 차원에서 중요한 분야인만큼 영업, 시설, 위생관리 살태를 면밀히 파악해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철저한 위생관리 체계를 갖춰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자영업자들은 정부에 시설 환경 개선을 위한 재정지원, 경영활성을 위한 정보 제공, 기술 교육·훈련 지원, 업종변경시 재정 지원, 폐업시 지원 대책 등을 호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