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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증권사들, 보유주식 팔면서 고객에게는 매수 권해… 매도 권유는 1건도 없어

[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증권사가 보유주식을 팔면서도 고객들에게는 한 번도 매도를 권유하지 않고 오히려 매수를 권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내놓는 '매수' 일변도 투자의견은 이미 관행으로 굳어져 증권사가 내놓는 보고서에 대한 신뢰도는 이미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져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 지 오래지만, 자신들이 내다 판 종목에 대해 뻔뻔하게 매수를 권하는 파렴치하고 부도덕적인 행각은 투자자들에게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올해 들어 자신들이 가장 많이 순매도한 종목에 대해 고객들에게 단 한 번도 매도를 권한 적이 없어 개인 투자자들을 희생시켜 자신들만 이익을 챙겼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증권사들의 이 같은 행태는 4년전 리먼사태 당시에 드러났던 미국 투자은행들의 행태와 유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증권사가 주식을 팔면서 고객에게는 매수를 권하는 행태에 대해 금융당국이 점검하겠다고 밝혀 결과가 주목된다.

20일 한국거래소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증권사들이 가장 많이 순매도한 SK텔레콤, KT, SK하이닉스, 한국전력, NHN 등 코스피 20개 종목에 대한 증권사들의 투자의견을 확인한 결과, 매도의견은 `제로'였다.

또 증권사가 이 기간에 이들 종목에 대해 발표한 분석 보고서는 모두 1970건이었지만 투자자에게 해당 종목을 매도하라고 제시한 것은 1건도 없었다.

반면 주식을 사들이라는 '매수' 의견은 무려 1920건으로 97.5%를 차지했고, '중립' 또는 '투자의견 없음(Not Rated)'은 50건으로 2.5%였다.

증권사 순매도 상위 종목 20개 가운데 웅진에너지(등락률 -15.90%), 현대해상(-4.78%), 한국전력(-2.35%), KT(-0.56%) 등 4종목의 17일 종가가 1월2일보다 모두 하락세였지만, 같은 기간 발표된 이들 4종목에 대한 증권사 리포트 321건 가운데 고객들에게 매도를 권한 리포트는 1건도 없었고 93%(298개)의 보고서가 매수를 권했다.

중립이나 `투자의견 없음'을 제시한 리포트는 23건에 그쳤다.

이 기간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사들인 순매수 상위종목 20개에 대한 증권사 리포트는 1322건이었는데, 이들 20개 종목 가운데 락앤락(-36.51%), 한국항공우주(-34.89%), STX엔진(-28.12%) 등 16종목의 현재 주가는 연초보다 하락했지만 이들 종목에 대해 `매도'를 제시한 리포트는 0건이었다.

증권사들은 주가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인데도 주식을 매수하라고 개인들에게 권한 것이다.

하나대투증권 김지환 리서치센터장은 "애널리스트가 매도 의견을 내지 않는 관행이 형성돼 있다"면서 "증권사 리포트가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거나 '중립' 투자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매도의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증권사들이 불황이나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조건 주식을 사라고 권유하면 기관이나 외국인보다는 기업과 증권업계 관계자를 직접 만나 정보를 수집할 수 없어 증권사 리포트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 밖에 없는 개인들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금융투자협회 최용구 증권지원부 부장은 "증권사 리포트가 투자자들의 절대적 판단기준은 아니지만 시장이 한쪽 방향으로만 예측하고 '매도'라는 불편한 쪽을 외면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석훈 박사는 "매수 의견에 치우친 증권사 리포트는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한다"면서 "현재 시장에서 애널리스트의 매수 의견을 얼마만큼 신뢰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널리스트가 리포트 작성 시 사용하는 정보가 기업으로부터 제공되는 만큼 긍정적 투자의견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만 매도 투자의견이 아예 사라진 현상은 문제"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증권사 영업직원과 리서치센터 간에 당연히 정보교류 차단장치(차이니즈 월)가 존재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문제가 있는지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투자의견이 `매수' 일색인 것은 분명히 문제는 있어 보인다"며 "개인 투자자들이 이런 행태로 피해를 보는지 점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애널들의 자율적인 의견 제시를 강제적으로 규제하는 것에 대한 반론도 있다"면서 "그러나 금융당국 차원에서도 이 문제를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이런 문제 인식은 거의 100%에 가까운 애널들의 `매수' 의견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