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조동일 기자] 수출입 비중이 큰 중소기업들이 환율 급변동에 아우성을 치면서도 `키코 사태' 악몽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엔화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환 헤지는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환율 하락에 최근 변동성 확대가 겹치면서 시중은행의 외환 창구에는 중소기업의 환차 손실 문의가 평소보다 배 이상 늘었다.
수출입 업체를 직접 방문해 컨설팅을 해주는 외환은행에도 환율 변동을 걱정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특히 예년 같으면 상담을 요청하는 기업의 90%가 수출입 컨설팅에 대해, 나머지 10%는 환 리스크 관리에 대해 상담을 받았지만 요즘은 이 비율이 역전된 상태다.
외환은행은 지난해 전국 각지를 돌며 130여개 업체를 찾아가 현장 상담을 했는데, 올해는 원화 절상과 롤러코스터 장세로 인해서 상담 횟수가 두 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시중은행들은 환율 문제로 어려움에 부닥친 중소기업을 위해 다양한 환 헤지 상품을 내놓고 엔화를 원화로 전환 대출 시 우대 금리도 적용해주고 있지만, 문의만 급증할 뿐 정작 가입하는 기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신한은행 등 시중은행은 이달부터 엔화 대출을 원화 대출로 전환하면 금리를 0.5% 우대해주고 있으며, 스탠다드차타드은행과 씨티은행은 선물환에 옵션을 집어넣어 다양한 환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상품도 선보였다. 그러나 신규 실적은 시중 은행 통들서 300여건도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은행 중소기업 고객 담당자는 "엔화대출을 원화대출로 전환하는 건에 대해 문의는 많은데 실적은 거의 없다"면서 "기업들이 앞으로 엔화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상당수 중소 수출업체는 최근 원화 절상이 많이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환 리스크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 은행의 외환컨설팅팀 팀장은 "과거 태산엘시디가 장사 잘하다가 키코 때문 주저앉은 것을 보고 환율로 몇 번 손해 보는 게 낫지 환 헤지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면서 "환율이 하방으로 갈 것으로 알면서도 은행이 말하는 것을 주저하다가 수천만원을 손해 봤다는 이야기를 많이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은행에서 제공하는 무료 컨설팅 서비스나 무료 환 리스크 관리 프로그램 등을 적극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시중은행의 외환업무 담당자는 "기업들이 선물환 거래만 하면 환 위험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데 환변동 보험이나 환율 알림 서비스 등 금융권이 제공하는 관련 서비스는 훨씬 많다"고 전했다.
다른 시중은행의 외환업무 담당자는 "10~20년 수출을 해온 기업 가운데 환율 변동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업이 생각보다 적다"며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시장 변화에 휩쓸려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으므로 은행이 제공하는 무료 컨설팅이나 환 위험 관리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