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엔화 15개월만에 17% 급락… 추가 하락 없다?

[재경일보 조동일 기자] 엔화 가치가 15개월새 17%나 급락하며 2007~2008년을 제외하고 1982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엔화 가치가 이미 떨어질 만큼 떨어졌기 때문에 향후 급격한 추가 하락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하게 진행된 엔화가치 하락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엔·달러 환율 하락세가 둔화하고 낙폭도 제한되면서 국내 수출기업의 피해도 더는 확산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JP모건이 1970년부터 올해 1월까지 44년간 엔화의 실질 실효환율을 분석한 결과, 올 들어 엔화는 2007∼2008년을 제외하면 198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질실효환율은 물가와 교역비중을 고려해 실질구매력을 반영한 지수로, JP모건은 2000년을 100으로 놓고 그보다 작으면 약세, 크면 강세로 분류했다.

이에 따르면, JP모건 기준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982년 70∼80대에서 꾸준히 상승, 1995년 최고 121.8까지 치솟았으나 이후 70대 후반과 100대 초반에서 등락을 반복하다가 2007∼2008년 상반기 사이 최저 65.1까지 떨어졌다.

이후 다시 오르기 시작해 지난해 9월 85.1을 기록했으나 이후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12월에 78.8, 올 1월에는 73.6으로 급락했으며, 2월에는 71까지 떨어질 것으로 JP모건은 추산했다.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2011년 10월 이후 지난 1월까지 17% 떨어졌으며, 이달 들어 명목 엔 달러 환율이 94엔까지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2월까지 19∼20% 가까이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KDB대우증권의 허재환 연구원은 "1970년 이후 엔화의 실질실효환율 추이를 분석해볼 때 엔화가 20% 가까이 떨어진 뒤에는 1∼2년 정도의 조정국면을 거쳤다"고 진단했다.

엔화 약세 추세가 끝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실질실효환율로 보면 현재 엔화는 떨어질 만큼 떨어져 엔화 약세가 현재 속도로 게속 진행하기는 어렵고, 유럽연합(EU)의 일부 국가들이 불편해할 수준까지 이미 하락했다는 것이다.

허 연구원은 "엔화 급락에 대한 역효과 우려도 있다"며 "수출업체 실적은 개선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수입물가를 자극해 무역수지 개선 속도에 부담이 되거나 해외부채가 많은 기업의 재무 부담을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도 최근 보고서에서 양적 완화를 통한 디플레이션 탈출로 요약되는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점으로 볼 때 엔화가 중장기적으로 하락을 지속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연구소는 단기적으로 올해를 보더라도 엔화가치의 추가 하락폭은 달러당 95엔선 안팎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 박상현 상무는 "미국이 아베노믹스에 동의했더라도 엔ㆍ달러 환율이 세자리수가 되면 미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약세흐름이 90엔대에서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비록 지난 12일 미국 라엘 브레이너드 재무부 차관이 공개적으로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며 '아베노믹스'에 힘을 실어줬지만 엔ㆍ달러 환율은 90엔대에서 머물 것이라는 것.

무엇보다 엔화약세가 지금의 속도로 지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회의감에 기인한다.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이 엔저와 주가 상승 등 금융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왔지만 이런 긍정적 효과가 실물경제에서도 나타날지는 의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제금융센터의 이정훈 연구원 "일본 정부의 목표인 고용증대, 2% 인플레이션 달성 목표를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에너지와 식료품 등의 물가상승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판단했다.

우리금융경제연구소 송경희 선임연구원은 "지속적 양적완화의 영향으로 물가의 상승세 전환은 가능하겠지만 2%의 인플레이션 목표치 달성은 어렵고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 상승세는 엔화하락을 제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양적 완화 기대감에 따른 엔화가치 하락 압력은 점차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 중장기적으로 디플레이션 탈출이 실패할 경우에는 엔화 가치 상승세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일본 경제가 안정적 경제 성장세를 유지하려면 기업투자와 민간수요 확대를 유도할만한 근본적 경제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가파르던 엔화약세 속도가 한계에 닿았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국내 수출기업들의 피해도 더는 커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 연구원은 "한국 제조업의 우수한 경쟁력과 해외생산 비중 확대 등을 감안할 때 원화강세ㆍ엔화약세로 대일(對日) 경쟁력이 크게 약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송 선임연구원은 엔저에 따른 자본유출입 변동성 확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환율에 민감한 업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금융기관과 기업이 협력해 환리스크 관리 방안을 모색할 것"을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