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신세계와 이마트 등기이사에서 사퇴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책임경영 회피 및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 부회장은 2010년 3월과 2011년 5월부터 신세계와 이마트의 등기이사로 선임돼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20일 신세계그룹 측은 그의 사퇴이유에 대해 2011년 기업 인적분할 당시부터 논의됐던 것으로 각사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특히, 최근 정용진 부회장이 베이커리 계열사 신세계SVN에 대한 부당지원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이나 이마트 노조설립 방해 및 직원사찰 의혹 등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룹 측의 이같은 해명들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이 실질적인 권한은 행사하면서 법적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지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선 등기이사의 사퇴는 명백한 책임경영 회피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현행 상법상 등기이사는 기업의 주요한 의사결정을 하며 횡령, 배임 등 기업의 불법행위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책임을 갖게 되는 등기이사 자리에서 사퇴한다는 것은 기업 경영상 문제가 생길 경우 이를 회피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현재 신세계그룹의 대주주로서 실질적인 지배권을 갖고 있는 정 부회장이 등기이사에서 제외됨으로써, 기업의 주요한 의사결정은 하면서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 불합리한 지배구조를 악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경제민주화 흐름과도 역행한다는 반응도 무시하기 어렵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회·경제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고, 이는 현재와 같은 재벌총수 체제 하에서 사익추구와 지배력 확대, 불법행위 만연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재벌총수의 사익추구와 과도한 지배력을 해소할 수 있는 재벌개혁 및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요구가 일어나게 됐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재벌총수의 사익추구를 방지하고 지배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기는 커녕, 경제민주화 움직임 및 재벌의 불법행위 규제로부터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행태를 보인 셈이다.
▲ 지난달 8일 서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진행된 2013 신세계 경영전략 임원워크숍에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가운데) 등 임원들이 책임경영 선언을 하고있는 모습. |
이와 관련, 김한기 경실련 경제정책팀 국장은 "지금처럼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등기이사 사퇴로는 책임경영을 이룰 수 없다"며 "재벌총수와 재계는 권한에 따른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도록 법적 의무를 스스로 지는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또한 "박근혜 당선인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며 총수일가의 불법 및 사익편취 근절,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웠다"며 "재계는 외부적인 규제가 시행되기 전에 스스로 불법행위 근절과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