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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재벌 총수 이사 재선임'에 반대표… 재벌가 사익추구 '제동'

[재경일보 양준식 기자] 국민연금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재벌 총수들의 이사 재선임안에 무더기 반대표를 던지고 전체적인 반대의견 행사 비율도 대략 8건 중 1건 꼴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는 등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 움직임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강화를 추진하겠다는 새 정부의 국정 방향에 국민연금이 발을 맞추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1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공시한 의결권 행사내역 자료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들어 지난달 말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재벌 총수들의 이사 재선임안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와 SK C&C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현대모비스 이사 재선임안과 SK C&C 이사 재선임안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며 이사 재선임을 반대했다.

나머지 10건은 지나치게 많은 계열사 이사직을 동시에 맡는 '과도한 겸임'이 문제가 됐다.

국민연금은 똑같은 이유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롯데쇼핑 이사 재선임안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롯데케미칼 이사 재선임안에 대해서도 반대표를 던졌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등 4명은 두 곳 이상의 계열사 주주총회에서 동시에 국민연금의 반대표를 받았다.

이는 지난해 초 하이닉스의 최태원 회장 이사 선임 당시 최 회장이 횡령ㆍ배임 혐의로 기소됐음에도 불구하고 '중립' 의견을 내 재벌 봐주기 논란을 불렀던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전체적인 반대의견 행사 비율도 사실상 상승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들어 3월 말까지 총 451차례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의안(2084건)의 12.5%인 260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다.

작년 18.4%보다는 5.9%포인트 낮은 비율이지만, 2008년 5.4%, 2009년 6.6%, 2010년 8.1%, 2011년 7.0% 등 예년보다는 크게 높아진 수준이다.

또 작년보다 비율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의결권 행사가 위축된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 국민연금 측의 설명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작년의 경우 상법개정 문제 때문에 비율이 크게 높아진 면이 있지만 올해는 그런 이슈가 없었다"면서 "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반대표 행사 비율이 크게 높아진 셈"이라고 말했다.

안건별 반대율은 정관변경이 36.9%로 가장 높았고, 이사 등 선임(26.3%), 감사 선임(25.9%), 감사위원 선임(16.2%) 등이 뒤를 따랐다.

반대 이유는 이사 등 선임의 경우 장기연임(31.9%), 과도한 겸임(24.1%), 출석률(21.6%) 등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이같은 모습에 대해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연기금의 의결권 강화가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된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월 21일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주요 추진계획 중 하나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를 제시했다.

이에 힘입어 최근 수년간 점진적 흐름을 보여왔던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가 속도를 더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연기금의 국내 주식투자 확대를 제한해 온 '10%룰'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것도 국민연금의 기업경영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