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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박근혜 대통령에 '선전포고'한 한라그룹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최근 한라건설에 대한 부당지원으로 문제가 된 만도가 100% 자회사인 마이스터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주주총회를 열어 안건을 결의했으며, 이달 중 유한회사 변경절차를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만도가 모회사인 한라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자회사인 마이스터를 통해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이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요건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 규정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한라건설에 대한 부당지원으로도 모자라 상호주 의결권 제한규정 회피를 위해 마이스터를 유한회사로 전환한다는 것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공약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만도가 100% 자회사인 마이스터를 통해 한라건설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결과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규정에 의거 한라건설의 만도 지분은 의결권 행사가 금지된다. 상법 제369조 제3항은 회사,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라그룹의 경우 '한라건설→만도→마이스터→한라건설'의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어, 자회사(마이스터)가 다른 회사(한라건설)의 지분 10분의 1을 초과해 취득한 것이므로 그 다른 회사(한라건설)가 가지고 있는 회사(만도)의 지분은 의결권이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한라그룹이 해법을 모색하던 중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규정이 유한회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법 회사編 유한회사章인 제578조는 주식회사 관련 규정을 준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자기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 제369조 제2항만을 준용하는 것으로 하고 있고,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인 제3항은 준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이스터가 유한회사로 전환하면 한라건설이 보유한 만도지분 20%의 의결권이 부활되어 지배주주 일가의 그룹에 대한 영향력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현행 법규정의 미비점을 악용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상법상 자기주식과 상호주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달리 볼 특별한 사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한회사章에서 자기주식에 대한 의결권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입법상 불비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한라그룹이 지배권 유지를 위해 현행 법규정의 미비점을 활용한 것은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이 조속히 입법되어야 할 당위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라그룹은 한라건설에 대한 그룹 계열사의 추가 지원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어보인다. 한 M&A업계 관계자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물타기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겠다는 공약을 했고, 지난 2월21일 발표된 인수위 국정과제 보고서에서 "기준 순환출자고리 강화를 위한 추가출자도 신규순환출자로 간주해 금지한다"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정부와 국회는 만도의 한라건설 부당지원과 같은 사례가 재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민주화 입법을 서두르고, 상법 제369조 제3항의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을 유한회사에도 준용하는 상법 개정안도 조속히 발의·통과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