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의 총파업 기간이 지속됨에 따라, 산업계 전반적으로 물류 차질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화물연대 총파업 나흘째인 1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파업 참여 인원은 전체 조합원 2만2000명의 약 35% 수준인 7800명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수도권 주요 물류거점 물동량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9일 기준 의왕 내륙컨테이너 기지(ICD)의 반출입량은 평시 목요일 반출입량의 8.3% 수준인 403TEU로 떨어졌다. 또한 인천항은 컨테이너 반출입량이 지난달의 16.6% 수준에 그쳤다.
부산항 10개 터미널의 컨테이너 반출입량 또한 지난달의 29.3%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시멘트 재고가 바닥나면서 전국 레미콘 공장 1085곳 중 60% 가량이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수도권 최대 레미콘 공급사 중 하나인 삼표산업은 17개 공장, 유진기업은 전국 24개 공장 중 16개 가동을 멈췄다.
시멘트협회에 따르면 화물연대 총파업 이후 시멘트 출하량은 평소의 5∼10% 수준으로 급감했다. 세종 등 충청권과 지방 일부에서는 제한적으로 출하가 이뤄지고 있지만, 수요가 가장 많은 수도권은 시멘트 출하가 전면 봉쇄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조만간 대부분의 레미콘 공장이 멈춰서고, 건설 현장에서도 피해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자동차 업계를 보면,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모든 차종의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태다.
그간 탁송 작업을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가 맡아 왔는데, 계약 운송업체 소속 화물 노동자의 70%가 화물연대 조합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물연대 울산본부는 부품 운송 거부를 유지할 방침이라 당분간 생산 차질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울산공장에서 만든 완성차를 외부 적치장으로 옮기는 탁송 작업에 일반 직원들까지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류 업계는 대체 화물운송 위탁사를 물색하는 등 제품 출하 정상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기존 화물운송 위탁사인 수양물류 화물차주들이 파업에 들어가 제품 출고율이 평시의 38%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에 따라 회사 측은 수양물류 외에 다른 업체와 동일한 조건으로 물류 계약을 맺었다. 새 물류회사 소속 화물차주들은 9일부터 이천공장 제품 운송 작업에 투입됐다. 다만 현재까지는 출고율이 정상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다는 입장이다.
오비맥주도 이천·청주·광주공장 3곳의 맥주 출하량이 평소의 5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짐에 따라, 화물연대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임시 화물차량을 최대한 많이 섭외한다는 방침이다. 목표는 출고율을 평시의 5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GS25와 CU,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업계는 소주 출하가 어려워짐에 따라, 직접 물류 차량을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으로 보내 소주 이송에 나서고 있다.
한편,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해 "정부가 법과 원칙, 그다음에 중립성을 가져야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자기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이 축적돼나간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으로 대응하고,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의 교섭을 통한 문제 해결 노력을 이어가되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해 처음으로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화물연대가 7일 0시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에서 일정을 급히 변경해가며 5일 밤늦게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참석차 스위스로 출국해 물의를 빚었다.
그는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안전 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 정책적 사항이 주된 쟁점이라 통상의 노사 관계와 다르지만, 경제 및 노사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또 생산과 물류 차질 등 관련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 범정부적 대응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파업' 대신 '운송 거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화물 차주는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이고, 화물연대는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노동법이 보장하는 '파업'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화물연대 위원장 등 실무진과 면담하고, 총파업 철회를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화물연대는 현재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철회 등을 주요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유가 상승에 연동한 운임 인상이 주된 이유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기사들의 적정임금을 보장해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로, 일몰제여서 올해 말 폐지될 예정이다.
화주 측은 안전운임제로 육상 운임이 30∼40% 가량 상승하면서 수출기업들이 해상·항공·육상 운송 모두 고운임에 시달리고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다양한 부대할증 부과·적용 문제로 현장의 혼란까지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준봉 한국무역협회 화주협의회 사무국장은 정부와 화주, 화물연대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하며, 정부가 유가 급등으로 인한 차주의 부담을 완화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안전운임제가 화물 차주(화물 기사)들의 어려움을 감안해 만들어진 제도지만 완성형은 아니며, 대다수 국민의 물가 부담으로 직결되므로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또 유가 인상 등 화물 차주들의 여러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있다며, 이른 시일 안에 당사자 간 원만히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화물연대의 요구사항에 대해 실무적인 논의를 지속하는 한편, 주요 물류거점에 경찰력을 배치해 운송 방해 행위를 차단하고 운행차량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군위탁 컨테이너 수송 차량 등 대체 운송 수단을 지속적으로 투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