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보상을 늘리기 위해 현행 수가(酬價·의료행위에 지불하는 대가) 제도를 전면 개편한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18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회의를 열고 이렇게 결정했다.
정부는 행위별 수가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상대가치 수가 제도를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 수가제도는 모든 개별 의료행위마다 단가를 정해 지불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근간으로 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행위별 수가가 전체 건강보험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행위별 수가제도는 의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치료 결과보다는 각종 검사와 처치 등 행위를 늘리는 데 집중하게 돼, 치료 성과나 의료비 지출 증가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많이 진료하면 할수록 더 많은 수가를 받게 돼 '과잉진료'를 초래할 수 있고 정작 중증환자 치료나 수술 등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행위별 수가제도의 단점을 극복하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도록 지불제도를 '가치 기반'으로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현행 상대가치 수가제도를 개편해 신속하게 '상대가치 점수'를 재조정하기로 했다.
상대가치 점수란 행위별 수가의 기본이 되는 '의료 행위별 가격'을 뜻한다.
크게 수술·입원·처치·영상·검사 등 5가지 분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수술과 입원, 처치는 저평가된 반면 영상이나 검사 분야는 고평가돼 있다.
박 차관은 "치료에 필요한 자원의 소모량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오랜 기간 경험을 쌓은 의료인의 행위보다는 장비를 사용하는 검사에 대한 보상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는 병원마다 경쟁적으로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고가 장비를 이용한 검사 등으로 의료비용을 높여온 것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박 차관은 "상대가치 점수 결정의 핵심인 업무량 산정의 권한을 의사협회가 위임받았으나, 내부 조정에 실패하면서 진료 과목 간 불균형이 심화했다"며 "상대가치 개편 주기도 5∼7년으로 길어 그간 의료 환경의 변화를 신속하게 반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상대가치 개편 주기를 2년으로 줄이고, 이후 연 단위 상시 조정체계로 전환할 방침이다.
올해부터 제3차 상대가치 개편안을 적용 중인 가운데, 향후 4차 상대가치 개편 시에는 필수의료 분야의 입원·수술·처치를 대폭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또 근거 중심으로 상대가치 점수를 조정할 수 있도록 표준 원가 산정을 위한 지침을 마련하고, 원가 산정 기준으로 삼을 패널 병원은 현행 100여개에서 더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상대가치 개편을 위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내에 '의료비용분석위원회'를 구성했고, 하반기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박 차관은 "수가 계획의 세부 항목은 의료계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며 "가급적 올해에 모든 계획을 완료하려고 하는데, 현장 의료진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서 결정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작업에 시간이 상당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필수의료에 '핀셋 보상' 방식의 투자 계획을 차질 없이 시행할 계획이다.
분야별로는 우선 난도가 높아 의료 공급이 부족한 화상·수지접합·소아외과·이식 외과 등 외과계 기피 분야와 심뇌혈관 질환 등 내과계 중증 질환 등 분야에 총 5조원 이상을 보상한다.
저출산 등 영향으로 수요가 줄어든 소아청소년과와 분만 등 분야에는 3조원 이상을 투입한다.
또 심뇌 네트워크, 중증소아 네트워크 등 '의료기관 간 연계 협력'을 통해 치료 성과를 극대화하는 분야에 2조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박 차관은 건강보험 재정 고갈 우려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이 28조원이고, 여기서 10조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것"이라며 "행위별 수가제를 유지하면 고령화로 늘어날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차관은 전날 방송에서 자신이 말한 '증원 없이 수가 인상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건강보험료가 3∼4배 이상 올라갈 것'이라는 발언을 두고는 "대학병원 의료진과 미용·성형 등 비(非)필수의료 시장의 보상 수준이 3∼4배 차이 나는데, 그 임금(차이)에 맞춰줄 수 있어야만 (비필수의료 분야로) 인력 유출이 멈추지 않겠나"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