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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그는 누구인가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종교계의 큰어른이었던 한국 최초의 김수환 추기경(세례명 '스테파노'). 그는 87년의 생애를 신앙 속에서 살다가 16일 선종(善終)했다.

김 추기경은 1922년 6월 3일(음력 5월 8일) 대구시 남산동에서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1928년 무진박해 때 순교자였던 그의 조부 김보현(요한) 때부터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독실한 가톨릭 가문에서 성장해왔다.

김추기경의 어렸을 적 꿈은 장사꾼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5-6년 동안 장사를 배워 25살이 되면 장가를 갈 생각'이었다고 전한바 있다.

그러나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성소(聖召)를 받는 아들이 나오길 기대했던 부모의 깊은 신앙의 영향으로 형 동환과 함께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

김 추기경은 보통학교 5년을 졸업하고 1933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해 성직자로 나가는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는 1941년 동성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의 상지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다. 1944년 일제 강압으로 학병에 징집돼 동경 남쪽의 섬 후시마에서 사관 후보생 훈련을 받기도 했지만, 이듬해 전쟁이 끝나면서 학업을 계속하다가 1946년 12월 귀국선을 타고 부산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후 1947년 초 서울의 성신대학(가톨릭대 신학부)으로 편입한 그는 4년 뒤인 1951년 9월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됐다.

그가 사제 서품을 앞두고 고른 성구는 시편 51장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였다.

김 추기경은 안동본당 주임신부를 거쳐 1953년 4월 대구교구장 최덕홍(요한) 주교의 비서, 그리고 독일 유학 후 1964년에 귀국해 가톨릭시보사 사장에 취임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66년에 신설된 마산교구의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는 동시에 주교품을 받고, 1968년에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됐다.

김 추기경은 1969년 교황 바오르 6세로부터 한국 최초로 추기경에 임명된다. 당시 전세계 추기경 136명 가운데 최연소로 그의 나이 47세였다.

그는 1970년대 유신과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을 강력히 비난하는 등 역사 현실에 동참했다. 그가 자리 잡았던 명동성당은 1980년대 학생운동의 역사를 대변하는 성지로 그곳에서 한국사회의 영욕을 몸소 겪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먼저 저를 만날 것입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저를 밟고 지나가십시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당시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에 겸손하지만 단호하게 뱉은 그의 말은 큰 감동을 주었다. 

 

김 추기경은 1998년 5월에 서품을 받은지 47년만에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정치적 격동기 속에서도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행사, 1989년 제 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등을 이끄는 등 한국 가톨릭교회의 도약에 앞장섰다.

최근 노환으로 입원해 있던 김 추기경은 지난 6월 11일 86회 생일을 맞이해 "빨리 사라져야 하는데 아직도 사라지지 못하고 하느님 앞에 머뭇거리는 것 같다"며 "그런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니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하면서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살아온 김 추기경은 후대에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났다.(사진=뉴시스)